🎓내 책장의 불청객들 : 코끼리 기념품과 책[5월의김스피]

2024. 5. 28.

인스피아 2024년 5월 마지막주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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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는 사람 : 김스피

받는 사람 : 연구자님

내 책장의 불청객들 : 코끼리 기념품과 책

[5월의 김스피]

도지코인 마스코트이자 인터넷 밈(meme)으로 유명한 시바견 카보스가 1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26일 '카보스마마' 사토 아쓰코씨와 카보스의 오랜 팬들은 모여 그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 ⓒKabosumama(링크)

>5월 레터의 비하인드 : 내 책장의 불청객들 : 코끼리 기념품과 책

>5월의 해찰 피드 : #노동절 #판

>지난 편지 해찰 : #홀로코스트 유머, 선 넘는 코미디언들

>알림: 인스피아 참고문헌 DB 사이트 개설!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5월은 수요일이 다섯번 있는 달이라, 격주로 편지를 보내드리게 되었습니다. 1주차 레터에선 ‘우리는 왜 여유가 없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았고요(💌왜 항상 쉬는 시간이 부족할까? : 여가 빈곤의 시대) 3주차 레터에선 20세기 한글 타자기 역사 등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한국어를 풍성하게 만들어갈 수 있을지에 대해 해찰했습니다(💌기승전-세종대왕? : 한글을 발명하는 사람들)

올해 5월은 휴일이 중간에 많이 끼어있기도 해서 ‘주 4일제 체험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었는데요.

게다가 우연히도 이번 달엔 제가 레터를 보낸 두 날이 모두 수요일-공휴일이기도 했습니다. 전날 레터 예약을 걸면서도, 괜히 공휴일 아침에 긴 글로 심란하게 만들어드리는 것은 아닌가 걱정했습니다만. 다행히도 많은 분들이 편지를 열어서 읽어주셨습니다.

경제적 빈곤과 시간 빈곤을 일컬어 ‘이중빈곤’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임금이 줄고 물가가 비싸진다면 결국 n잡을 하거나 최저가 쇼핑을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죠. 이 둘이 긴밀하게 연결된 것입니다. (왼쪽) 모두 노동을 하지만 5월 1일에 모두가 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 경향신문, 엑스(링크)

물론 다양한 이유로 쉬지 못한 분들도 계실텐데요. 저는 최근 '주 80시간 근무 투잡족 증가'에 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링크) 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영향을 오롯이 누릴 수 없는 사각지대(점점 훨씬 더 넓어져가는)를 반드시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진정한 '여유'를 위해 필요한 삶의 조건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관련해서는 아래 ‘해찰 피드’에도 읽을 만한 기사들을 첨부했습니다.

지난 레터에선 짧게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만, 성인 10명 중 6명이 책을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다는 소식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책은 자리를 차지하는 네모난 골칫덩어리인데다가 인기도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근래 유심히 읽어본 소식이 있습니다.

동네책방에 대한 기사였는데요.(링크)

책을 안 읽는 시대지만 동네책방은 늘어나고 있고, 동네책방은 ‘책’이 있는 곳이라기보다는 멋진 인스타그램 포토스팟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어 책방 주인의 시름이 깊다는 내용이었죠.

워낙 돈도 여유도 없는 시대라고 하니 모든 사람에게 책을 잔뜩 사!라고 말을 할 순 없겠습니다.

다만 최근 저의 책장을 쳐다보다가 동네책방과 ‘쓸데없는 책’에 대한 해찰을 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는데요. 오늘 레터에선 이와 관련된 짧은 해찰을 나누어볼까 합니다.

👤5월 레터의 비하인드 : 내 책장의 불청객들 : 코끼리 기념품과 책

연구자님은 책을 어떻게 구입하는 편이신가요?

집에 자리가 많지 않아 전자책을 많이 구입하실 수도 있을테고, 커다란 책장을 가져서 유익한 책들을 많이 사서 꽂아두시는 분들도 계실텐데요.

보통 저희 집에 놀러온 사람들은 책장을 보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생각보다 그렇게 책이 많지 않기 때문이죠.

(인스피아 같은 레터를 쓰는 사람의 집이라면, 막대한 양의 책에 허우적대는 집을 상상하게 되는가 봅니다)

그 이유는 저희 집이 비좁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책을 사거나 남겨둘 때 꽤 까다로운 규칙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아주 급하게 읽어야 하는 책 혹은 크게 기대했던 책이 아닌 이상, 주로 제가 이미 한두 번 이상 읽었던 책들 위주로 구입합니다. <채링크로스 84번지>를 쓴 헬렌 한프는 ‘반드시 입어본 옷만 사듯이 나는 반드시 읽어본 책만 산다’라고 했는데 그와 비슷할지도요.

이는 꼭 질이 보장된 책만 사겠다라는 ‘안전빵 구매’라기보다는, 약간 제단을 꾸미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책들, 신세지고 싶은 책들로 책장을 채워 그로부터 무언가 신묘한 에너지(?)를 얻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과거 한 소설가는 소설 속 인물의 입을 빌어 심지어 좋아하는 책인데 서문이 마음에 안들 경우 서문을 찢어서(!) 버리고 나머지만 보관을 할 정도로 자신의 마음에 드는 것들로만 책장을 채운다고 했는데요. 저는 그 정도까진 아니지만, 제가 별로 두고 싶지 않은 책이 책장에 꽂히면 마치 지나가던 낯선 불청객이 집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안절부절 못하게 됩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좋은 책인 건 익히 알고 있고, 언젠간 꼭 읽어야 할 책이지만 아직 읽진 못한 책, 아직 다 읽지 못했으나 정말로 좋아서 중간에 더 이상 책장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잔뜩 신난 나머지 책장을 덮고 흥분된 마음으로 구입해버린 (하지만 구입한 이후 더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있는) 책들도 저의 소박한 책장에 꽂혀있습니다.

위에 속하지 않는 책들은 대체로 구입하더라도 금방 읽은 후 폐품으로 버리거나1)

, 회사 사무실에 쌓아뒀다가 주변에 나누어주거나 하기 때문에 적은 양의 책을 남길 수 있게 되고요.

나름의 규칙으로 가꾸어진 작은 책장을 가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고 뿌듯해지곤 합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책장에도 규칙을 흩뜨리는 일부 예외가 있습니다.

‘기념품’ 부류의 책인데요.

책의 내용보다는 그 상황에 이끌려 얼렁뚱땅 사게 된 책들입니다. 예를 들면 분홍색 책 표지만 꽂아둔 책장이라 그중에 유독 마음에 든 분홍을 발견한 김에 사게 되었다든지, 오랜만에 구경 간 헌책방에서 샀다든지(최근에 헌책방에서 구입한 책은 위대한 마늘 요리, 비슷한 제목의 유익한 책입니다), 손님이 나 혼자뿐인 독특한 컨셉의 동네 책방에서 구경 후 눈치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무언가 사들고 와야 할 것 같아서 집어들고 나오게 되는 경우 등인데요. 이중에서도 특히 마지막의 경우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 제게 있어 옆칸에 꽂힌 ‘다른 책’들보다는 책장 옆에 놓인 나무 코끼리 기념품 쪽에 가깝습니다. 책의 내용, 그 자체에 대한 관심보다는 상황에 따라 구입했다는 점에서인데요. 제 책장 한켠에 꽂힌 이런 책들은 마치 공룡 인형들 사이에 파자마를 입고 선 장난감 병정처럼 어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최근 간만에 책장을 정리하며, 문득 최근 이런 ‘기념품’ 책에 대해 새삼스러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근래 ‘기념품’ 코너에 꽂힌 책들 가운데서 실제 레터 등 원고에 활용한 것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 글들이 저 스스로도 꽤 마음에 들어하는 글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궁금해졌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보통은 내가 정말로 본받고 싶고 배우고 싶은 글을 읽었을 때, 더 좋은 글이 나와야 하는 게 아닐까요?

미국 작가 헬렌 한프는 헌책방 주인과의 편지를 엮은 책 <채링크로스 84번지>에서 "읽어보지 않은 책을 사는 것은 제 원칙에 위배되는 일이에요. 입어보지 않고 옷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죠"라는 자신의 책 구입 철학(?)을 풀어놓습니다. 실제 이 책에서 그는 판본까지 지정해 꽤 깐깐하게 주문을 넣죠. 한편 그는 가끔 정반대로 엉뚱한 주문을 넣기도 합니다('적당히 바지 주머니에 넣고 산책 나갈만한 책을 보내주세요') (왼쪽) 서평집의 제목이 "읽거나 말거나"라는 건 역시 충격적이죠. '세상에 이런 책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아마 이 책에 등장한 상당수의 책들이 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 Hulton Archive, 봄날의책

심지어 ‘기념품 책들’ 가운데서도, 무난하게 제가 좋아할 만한 책들보다도 - 제가 들어선 동네 책방에 도저히 제 취향의 책이 없어서 대강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들고 나왔던 ‘엉뚱책’들에서 좋은 글들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최근 레터에서 다루었던 책들 가운데서도 엉뚱책이 한권 있었는데요. 그간 다루었던 모든 엉뚱책들 가운데서도 유독 - 평소라면 가장 제가 제 돈주고 안살만한 책을 꼽아보자면 지난해 11월 ‘미니멀리즘’ 회차(레터)에서 잠깐 다루었던 <사는 데 꼭 필요한 101가지 물건>(후지오카 미나미) 정도일까요. 당시 동네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한 이유는 표지에 그려진 집이 넓어서 좋아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내 취향도 아닌 책을 구입한 데에 대한 약간의 불만감, 억울함과 이에 대한 보상심리(‘글감으로 써먹기라도 해야지’)일까요? 그런 부분도 어느정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그보다도 저는 어쩌면 우연한 만남이 가져다주는 각별함 그 자체가 가져다준 선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서 준비해준 것도 아니고, 제가 굳이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지만 - 딱, 마주치는 그 순간.

인도네시아에서 오래 전 사온 코끼리 장난감은 그 시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할 뿐이지만, 책은 표지로만 꽂혀 있다가도 언젠가 펼쳐들면 그 상황에 대한 회상 뿐 아니라 그 책 자체가 가지고 있던 메시지를 언젠가는 펼쳐서 보여줍니다.

또한, 때로 나와 맞지 않는 책들과의 틈새, 우연에 주목할 때 더 새로운 이야깃거리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인스피아 초기에 다루었던 폴란드의 노벨상 수상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는 아파트 셀프 도배하(고 망하)는 법, 쥐가 찍찍대는 소리를 구분하는 방법에 대한 책, 동아시아산 식재료 없는 동아시아 요리 레시피책 등 엉뚱한 책들('읽거나 말거나' 한 책들)만을 다룬 서평집인데요.2) 쉼보르스카는 마음에 안드는, 왠지 자신의 생각과 맞지 않는 수상한 부분에 대해 계속 갸웃거리면서도 책장을 넘기며 글을 이어갑니다.

“작가는 어느날 한 공공도서관에 들렀다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거기서 그는 '근심걱정'이라는 검색어로 모두 22권의 책을 발견했다. '지렁이'라는 검색어로는 무려 89권이나 찾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안타깝게도 잘못된 서가를 뒤졌다. 만약 순수문학 서가를 들여다보았다면 근심걱정을 주제로 한 수천, 수만권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 데일 카네기, <근심걱정 버리고 살아가는 방법>(1995)에 대한 서평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예전 사회주의 체제 때의 직장인들이 지금보다 훨씬 편하게 살았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 상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한다 해도 손님에게 물건을 사라고 권유하거나 홍보할 필요가 없었다. 물건을 사려고 늘어선 줄이 없어지기도 전에 물건이 먼저 동이 나곤 했기 때문이다.”
- 샌디 맨, <직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실제 감정을 숨기고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법>(1999)에 대한 서평 (이상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에서 인용)

이렇게까지 마음에 안드는 책이라면 그냥 던져버리면 독자도 좋고 필자도 기쁠 것 같은데, 그는 어떻게 해서든 백권이 넘는 엉뚱책들을 읽고서, 백편이 넘는 원고를 채웁니다.(그래야 원고료가 나옵니다) 마감 기한과 엉뚱한 기획, 마음에 썩 안드는 불청객같은 책들, 위대한 시인의 투덜거림 사이에서 참신하고 번쩍거리는 글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약 쉼보르스카가 '아주 훌륭한 고전' '반드시 죽기전에 읽어야 할 고전'들만으로 서평을 썼다면 제가 이 책을 그렇게 좋아하게 되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꼭 ‘좋은 책’에서만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 것은 - 어쩌면 나만의 글이란, 텍스트(책)와 텍스트(나)가 만나 덜걱거리는 틈새에서 나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지난달 쯤 한 동네책방에서 사온, 모르는 시인의 시집 한 권을 책상 귀퉁이에 꺼내놓습니다.

그 시집을 펼쳐 쓰다듬어 볼 때마다 그 서점에 머물렀던 시간, 원목 가구의 냄새와 해질녘 책장을 비추어주던 은은한 황색 조명 그리고 블루스 음악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책은 기본적으로 낭비입니다. 더구나 내 취향에 맞지도 않는 책을 덥석 사오는 것은 큰 낭비라고 할 만합니다.

‘이성적이고 까다로운 소비자-독자(혹은 그런 것을 추구하는 사람)’로서의 저는 평소 대체로 이런 일을 잘 하지 않지만, 헌책방이나 동네책방에 가면 그런 책을 집어들게 됩니다. 제가 책을 고른다기보다는 책이 저를 고르는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낭비에서 제가 생각하기에 재미난 글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그것이 ‘철저한(처절한?) 낭비’일수록요.

어리둥절해지는 일입니다.

1) 저는 보통 산 책에는 낙서를 아주 많이 하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읽은 책은 중고로 팔 수가 없습니다. 조만간 '책에 낙서하기'와 관련된 회차를 한번쯤 다루어봐도 좋을 것 같네요.

2) 책 해제에 따르면, 쉼보르스카가 이같은 '엉뚱책'들로 서평을 연재해야 했던 이유는 연재가 주로 이루어졌던 1970년대 폴란드에선 언론 탄압이 극심해 '사회/정치적인' 책들을 다루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5월의 해찰 피드 : #노동절 #판

5월 한 달간 SNS에서 특별히 이슈가 되었던 기사, 이슈가 된 사건 등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좋은 칼럼 등을 소개합니다.

#노동절

노동절, 근로자의 날...매년 5월 1일이면 매체마다 이 날을 부르는 이름은 갈리곤 합니다. 단지 이름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오늘날에 많은 사람들은 노동을 하고 있지만 ‘노동자’로서 보장받아야 하는 권리들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선 두 가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고, 하나는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는 사각지대에 관심을 두고 마땅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이 되도록 많은 이들에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합법적 무법지대’...5인 미만 사업장

독서 시간: 약 11분 / 글자수 : 약 6000자

👤글 속 한문장

“재단사 전태일은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 국민은행 앞길로 뛰어나가 구호를 외쳤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전태일의 온몸을 휘감은 불길 속으로 한 동료가 근로기준법 책을 던졌다. 지키지도 않는, 허울 좋은 법을 태워버리자는 전태일의 뜻을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54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제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특수고용직·플랫폼·프리랜서 등 비임금노동자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태웠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태워버릴 노동법이 없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노동절 137주년을 맞아 경향신문이 연재한 <노동법 밖 노동자> 시리즈(3회·목차)의 첫 기사입니다. 노동법 밖의 노동자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근로기준법에는 진입장벽이 있습니다. 노동자를 위한 법이지만, 상시 직원 ‘5인 미만’인 사업장에서 일하는 이들에겐 적용되지 않죠. 게다가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평균 연령과 노동 시간이 모두 높은 편입니다. 또한 5인 미만 사업장에선 불합리한 노동 조건 등에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기도 어렵습니다.

“나는 잘 웃어요, 나는 잘 울어요.”

독서 시간: 약 4분 / 글자수 : 약 1600자

👤글 속 한문장

“모르는 사람이 죽었어요. 모르는 사람… 얼굴도 본 적 없는 사람….” 2020년 12월 어느 날. 그녀는 ‘모르는 여자’의 영정을 들고 안산의 어느 농장으로 향한다. [...] 시간이 흘러 2024년 4월, 그녀는 또 ‘모르는 여자(이주노동자)’의 사연을 통역하며 운다. 모르는 여자의 사연이 너무 가슴 아파서 눈물이 흐른다. 그녀는 울고, 울어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통역을 계속한다. 캄보디아어 통번역사 킴 렉카나[...]

“새벽 4시, 5시에도 제게 전화해요. 불안해서요. 무서워서요. 그런데 한국에서 전화할 데가 또 없으니까, 들어줄 사람이 또 없으니까.” 그녀는 새벽에 불쑥 걸려오는 전화 받기를, 곁에 머물기를, 듣기를 오늘도 계속하고 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소설가 김숨이 쓴, '지구인의 정류장'(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와 회복을 돕는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통역사, 상담가 킴 렉카나에 대한 글입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 오래 있어도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말을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그는 그저 조용히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곁을 지킵니다.

#판

예전에 비운의 발명품에 대한 글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늘날의 스마트폰과 굉장히 유사한 발명품이었는데요. 이 발명품은 꽤 완벽했습니다. 그게 1990년대초에 발명된 것만 아니라면요.

'판(場)'이라는 단어를 생각합니다. 과연 특출난 한 천재, 발명품이 별세계에 퉁 떨어져있으면 자신의 쓸모, 재능을 펼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재능이나 어떤 것의 쓸모라는 것 자체가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 소통하며 건전한 비판 및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많은 동료선후배와 안목있는 청중(소비자), 유통 및 사회적 인프라, 업계 분위기, 시대 배경 등을 아우르는 것일 것입니다. 5월 한달 간 '판'이라는 단어로 엮어볼만한 사건/기사들이 몇개 있었기에 함께 엮어보았습니다.

화려하기만 한 디저트판, “맛없다”

독서 시간: 약 10분 / 글자수 : 약 4500자

👤글 속 한문장

“줄서기로 유명한 디저트 인기 가게들을 주기적으로 팝업 스토어로 끌어오는 이곳은 여전히, 특히 휴일이면 조기축구회가 열린 운동장마냥 활기로 그득하다[...]그런데 2024년 지금의 디저트는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는가?[...] “백화점이 왜 이렇게 디저트 편집 공간을 만들었을까요? 채울 만한 신선식품이 없기 때문입니다. [...]디저트는 밀가루, 설탕, 지방 등으로 형태를 조형하는 음식이고 그 자리에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현장에서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도 않고 그럴싸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는 최적의 아이템이죠.”[...]황량해진 테이블 위에는 “그저 남과 다른 것을 하기 위한 다름”, 트렌드라는 파도,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사공들, 산으로 간 맛과 질, 어느 한 점이라 칭할 수 없는 얼룩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이달 초 신랄한 평(?)으로 인해 SNS와 각종 커뮤니티에서 큰 이슈를 불러왔던 GQ 기사입니다. 백화점 팝업 스토어의 유명한 디저트 수십가지를 작가, 음식평론가 등 업계인이 직접 먹고 별점 및 평을 한 기사인데요. 이 기획/유통을 보고서 세 가지 차원에서 놀랐는데, 1)기존에 디저트에 관심이 없었을 사람들조차도 읽고서 한 마디씩 보탰고 2)평이 가차없어서 놀랐고, 마지막으로 3)오랜만에 본, '판'을 비판하는 기사였다는 점에서였습니다.

저는 이런 종류의 기사가 분야를 막론하고 더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비평이 없고 소비자를 주눅들게 만들기만 하는 분야는 결국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와 관련된 고민은 앞으로도 레터에서든 레터 밖에서든 꾸준히 이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연구자님이 어떤 분야에 계신 분이든 자신의 분야에 기대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단의 디저트 평들도 흥미롭지만, 반드시 페이지 하단의 기사를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엔터업계, 아티스트-팬 더 잘 놀 수 있게 해야”

독서 시간: 약 12분 / 글자수 : 약 5700자

👤글 속 한문장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어쨌든 크리에이티브로 작동하는 영역이에요. 영화·연극·그림이 그렇듯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중요한 업종입니다. 그런데 보통 사업의 확장은 복제하는 거란 말이에요. 엔터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한 명의 크리에이터에서 파생되는 작품을 어떻게 구조적으로 시스템화해서 생산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거죠. 사실 K팝의 30여년 역사는 그걸 미션으로 삼고 계속 실험해온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회사는 뭘 해야 할까요. 아티스트와 팬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이게 이상적으로 보이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하면 아티스트와 팬이 더 잘 놀 수 있게 할까 고민하면서 사업을 키워야 하는 거죠.“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달 25일 라이브로 진행 된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은 그야말로 사회 현상이라고 할만큼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이에 대해 논설위원이 직접 차우진 음악평론가를 찾아가 진행한 심층 인터뷰입니다. 맥락을 잘 몰랐는데, 인터뷰를 읽으며 사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거의 몇년만에 kpop 걸그룹 노래를 본격적으로 찾아서 들어보기 시작했는데요. 생각보다 참신하고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어떤 '판'에 문외한들을 끌어들이는 인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정해진 성공공식을 무조건 따르기 보다는(물론 산업이므로 수익성을 아예 생각하지 않을 순 없겠습니다만), 창작자와 실무자, 예술가들이 어느정도 자신의 개성과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서 오지 않을까요?

나서지 않고 받쳐주다...‘뒷것’ 김민기

독서 시간: 약 6분 / 글자수 : 약 3000자

👤글 속 한문장

“"나는 뒤에, 너희들은 앞에" 방송은 많은 증언자를 통해 선생이 평소 배우들에게 “늘 너희들은 ‘앞것’이고 나는 ‘뒷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말은 “너희들, 배우들은 앞에서 무대에 서서 너희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나는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받쳐주겠다”는 의미이다.
가수 양희은은 1970년대 김민기 선생을 처음 봤을 때 그의 ‘뒷것’ 인생을 알아보고 ‘석구’라는 별명을 지어줬다고 한다. 석구는 '구석'을 뒤집은 말이다. 김민기 선생은 한사코 빛나는 무대가 아니라, 무대를 빛나게 하는 자리, 구석에 있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김민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아침이슬'이나 가수로서의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대학로에 문을 열어 지난 3월 15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극장 '학전'(링크)의 뒷것으로서, 보이지 않게 선한 영향력을 미쳐왔습니다. SBS가 최근 발표해 큰 호응을 얻은 3부작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링크)에 대한 칼럼입니다.

성공을 위해 모두가 남을 착취해서라도 자기 어필을 해야한다고 외치는 시대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남들을 빛나게 해주고 판에 생동감을 더하는 데 온힘을 다하는 사람의 귀중함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기자 빼고 다 있던 ‘민희진 기자회견’

독서 시간: 약 3분 / 글자수 : 약 1300자

👤글 속 한문장

“후대는 엉망진창 우당탕쿵탕 흘러가는 이 사태를 뭐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일단 ‘민희진 기자회견’이라 불리는 이 사건의 내용과 형식 간 모순이 압도적이다. 요컨대 기자회견이라면서 기자들이 한 일이 별로 없다. 있었다면 민희진 대표의 비상하고도 비장한 말하기에 추임새를 넣어 준 일이다. 돌이켜 보면 기자가 아닌 다른 누가 말을 거들었어도 달라질 게 별로 없었다. 기자가 소용없는 기자회견이라니, 이런 당착이 어디 있겠냐 싶지만, 실은 그랬기 때문에 우리가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역대급 드라마가 펼쳐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지난달 25일 ‘민희진 기자회견’에서 압도적으로 이목을 모았던 것은 민희진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의 발언의 폭발력이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수많은 동영상, 기사, 칼럼 등이 그간 쏟아졌는데요. 그 중에서도 조용히 다른 지점을 지적한, 왠지 모르게 제 눈을 끌었던 이준웅 서울대 교수의 칼럼입니다.

이 교수가 이 칼럼에서 주목하는 것은 독특하게도 ‘민희진 기자회견’에서 ‘민희진’이 아닌 ‘기자회견’입니다.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은 기본적으로 논란이 되는 어떤 사안에 대해 기자들을 불러 입장을 표명하고, 이에 대해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받고 이에 응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민희진 기자회견에서 없었던 것은 ‘질문을 하는 기자’의 존재였습니다. 저는 이 칼럼을 읽으면서 '기자회견'이라는 단어가 오용되는 맥락은 결코 오늘날 질문 없이 - 질문이 있더라도 사전에 받아 - 연극무대처럼 진행되어온 수많은 정계 등의 기자회견의 모습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했을 때 이 사안은 ‘언론판’의 문제로도 궁리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링크)

💌지난 편지 해찰 : 홀로코스트 유머, 선 넘는 코미디언들

[선 넘는 코미디? 웃음과 표현의 자유] (2021.9.29 발행·링크는 하단 사진)

최근 구독자 수 약 300만의 코미디 채널(피식대학)에서 지역 비하적인 내용을 담은 영상이 올라와 논란이 되었습니다.(링크)

그가 과거 “MZ세대는 선을 넘는 유머를 좋아한다”고 했는데요.(링크) 과연 선이란 무엇일까. 깊게 고민했었습니다. 과연 표현의 자유를 ‘일부 몰지각한 대중들’이 억압하고 있으며, 창작자에게 모든 자유가 보장되면 되는 걸까요? 그 안에서 모두가 웃을 수 있을까요?

과거 유머와 선타기에 대해 해찰해본 레터에선 홀로코스트, 나치 유머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The last laugh>,2016)를 직접 다루어보았습니다.

이 매운맛 다큐멘터리에선, 심지어 나치 유머를 홀로코스트 생존자 노인들에게 직접 보여주고 의견을 묻기도 하는데요(...). 놀라운 것은, 개중에 노인들이 보고 웃는 유머가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어떤 유머에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쉽니다. 과연 당사자들이 웃는 유머와 그렇지 않은 유머는 단지 '개인취향'의 문제이기만 한 것일까요?

그 ‘선’을 어떻게 타냐고요? ‘잘’이요.

웃음은 사람을 살게 합니다. 심지어 내일까지 살아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는 수용소 안에서도요. 그리고 그것은 애초부터 매우 복잡한 예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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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의 젊은이들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의견에 서로 웃지 않아요. 저는 스탠드업 코미디가 일본 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야나가와 사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