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뉴스와 ‘노잼’ 뉴스 : 도파민은 세상을 바꿀 수 있나?

2024. 6. 4.

‘충격’ 뉴스와 ‘노잼’ 뉴스 : 도파민은 세상을 바꿀 수 있나?

Breaking News and ‘No-jam’ new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126), 2024.6.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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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레터의 마지막에 ‘베르나르 뷔페’ 전시(예술의전당) 티켓 증정 관련 안내가 있습니다.

키워드: 충격, 도파민, 맥락, 뉴스, 노잼

1.머리말
2.[속보][충격] ‘남의 고통’! : <고통 구경하는 사회>
3.‘충격’이 아닌 ‘맥락’으로 : <아마존 디스토피아>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연구자님은 온라인 쇼핑을 자주 이용하시는 편인가요?

저는 종종 이용하고 있는데요. 원래도 온라인 쇼핑을 해왔지만, 코로나 이후 한층 ‘필수’가 된 것 같습니다.

온라인 쇼핑 이야기로 운을 뗀 것은, 최근 SNS에서 크게 이슈가 된 독특한 영상을 보았기 때문인데요.

국내에서도 저렴한 값으로 인기인 어느 해외 온라인 쇼핑몰(T사)의 물류창고 풍경이라고 소개된 짧은 영상(링크)에선 웃통을 벗은 노동자들이 등장해, 로봇보다도 빠른 속도로 상자들을 착착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상자가 워낙 잔뜩 쌓여있다보니 거의 갈색 바다에서 양팔을 휘두르며 헤엄을 치는 사람들 같이 보이기도 하는데요.

반응은 대체로 갈렸는데, 1. “기계화 시대에 여전히 인간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힘든 일을 하고 있다”는 반응과 2. “싸서 좋긴 한데, 내 택배를 마구 집어던지다니!”라고 분개하는 것이었습니다.

<fig.1> 최근 중국의 인기 인터넷 쇼핑몰 물류센터 풍경이라는 설명과 함께 각종 SNS, 커뮤니티에 퍼진 짧은 영상. 오늘날엔 짧고 강렬한 장면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분노(반응)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왼쪽) 이런 '충격 장면'에 때때로 깜짝 놀라‘기만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 Tiktok, Unsplash

처음엔 이런 반응을 보고서 - 열악한 조건에서 힘들게 일하는1) 사람들을 보면서도, 자기 택배를 먼저 생각하는 것에 다소 착잡해졌는데요.

하지만 곰곰 생각하다보니, 충격적인 영상을 보고서 ‘깜짝’ 놀라고 ‘측은’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차피 온라인 주문은 계속 할테니까요. 약간의 죄책감은 얹힐 수 있겠지만요.

그런데 중요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누군가에겐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참고로 저 영상의 배경은 심지어 T사조차 아니라는 것입니다.(링크) 1분짜리 맥락 없는 영상에서 우리는 무엇이 사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 외에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습니다.

짧고 강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타인의 고통이나 불행’을 다룬 콘텐츠, 기사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깜짝 놀랄만한 극적인 장면을 눈 앞에 들이밀고, 양심을 쿡 찌른 후 다른 구경거리를 재빨리 가지고 오는 거죠. 예를 들면 기후 위기라고 하면 으레 계절에 따라 쪽방촌의 찜통같은 ‘열악한’ 방을 보여주거나, 산업재해 사건에서 구조적인 문제보다는 피해자가 평소 어떤 사람이었다는 등의 ‘눈물나고 기구한 사연’을 부러 찾아 부각하는 거죠. (링크)

그런 일들이 반복되며 사람들은 자극적인 소식, 뉴스에 진절머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되레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통상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타고난 감성 지능’이랄지 ‘자연스러운 양심’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들이, 타인의 상황을 저절로 꿀떡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하지만 그간 저는, 타인의 고통에 제대로 감응하고 남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억지로 내 상황에서 벗어나서, 굳이 전체적인 상황을 바라봐야 하는 일이죠. 그러나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좇는 오늘날 이처럼 맥락을 파악하게 해주는 종류의 보도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남의 고통에 무딘 요즘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하기보다는(오늘날 뉴스, 콘텐츠 생산·소비 습관을 감안하면, 남의 고통에 민감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우리가 어떻게하면 타인-우리의 고통,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지 곰곰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오늘 레터에선 <고통 구경하는 사회>(김인진), <아마존 디스토피아>(알렉 맥길리스)를 지팡이 삼아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실은 이마저도 어쩌면 영상 촬영자-시청자 안에 내포된 타자화, 왜곡된 시각일 수 있습니다. 더운 사람의 입장에서는 웃통을 벗고 일하는 게 때로 더 편안할 수 있고, 꼭 문외한에게 가장 이국적이고(낯설고) 극적이어 보이는 장면이 ‘참담한’ 장면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외계인이 제가 회사에서 신발 벗고 일하는 걸 보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구나라고 눈물을 흘리면 난처해질 것입니다.

【2.[속보][충격] ‘남의 고통’! : <고통 구경하는 사회>】

“각자의 시선이란 잔인할 정도로 개인적이고, 우리의 망막에 고인 타인의 고통은 아무리 자극적이어도 눈물 한 방울 내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中

1906년, 충격적인 소설 한 편이 미국을 뒤흔들었습니다. 업튼 싱클레어가 한 잡지의 청탁을 받아 직접 시카고 공장을 취재해 쓴 <정글The Jungle>이라는 소설이었는데요.

주인공인 이주노동자 유르기스가 축산물 가공 공장에서 일하면서 얼마나 비참한 노동 조건과 빈곤에 시달리는지를 리얼하게 고발하는 소설이었죠. 공장, 노동에 대한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다 못해 처참한 수준이라 소설책을 손에 쥔 사람들은 깜짝 놀랐죠.

일부 대목을 옮겨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노동자들은 저마다 특별한 질병에 걸려있었다 [...] 늙은 안타나스가 죽음을 당했던, 화학 약품으로 고기를 씻어내는 작업장의 일꾼들을 보자. 거기엔 치명적인 병증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 압연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포기하거나 완전히 잊어버리고 자기 손이 찍혀 나갈 각오 없이는 도저히 주어진 속도에 맞춰 일할 수 없었다 [...] 마룻바닥과 거의 같은 높이로 열린 큰 통이 있었다. 사람들은 항상 자기가 그 통에 빠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속에서 일했다. 어쩌다 거기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면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떤 때는 며칠 동안 사람이 빠진 줄도 모르고 있다가 뼈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더럼 순수 잎사귀 라드’라는 상품으로 세상에 내보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 마치 요원들을 일부러 전국에 파견해서 절뚝거리고 늙고 병든 소들만을 통조림용으로 끌고 오는 것 같다는 얘기였다.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찌꺼기로 사육되는 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황소 비슷한 놈’이라고 불렀다. 온통 종기로 뒤덮여 있어 차마 ‘황소’라곤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들을 도살하는 일은 아주 지겨운 일이었다.

-업튼 싱클레어, <정글>

이 밖에도 처참한 ‘노동 환경’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중심인데요. 이 단 한 권의 소설은 출간된지 1년도 안되어 의회에서 미국 역사 최초로 ‘어떤 중요한 법’이 통과되는 계기가 됩니다.

바로 ‘식품위생법’이었습니다.

싱클레어는 대중에게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하려 했지만, 정작 이 책을 읽은 소비자들은 내가 먹는 고기가 이렇게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만들어졌다니! 하며 충격을 받았고, 이를 계기로 식품 가공 공정의 위생, 관리 기준을 강화한 미국 역사 최초의 식품의약품위생법(The Pure Food and Drug Act)이 생겨났죠.

<fig.2> 20세기 초 미국 네브라스카주 육류 가공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이들은 위험한 화학약품 등을 다루며 열악한 노동 환경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왼쪽) 1907년 <정글>의 배경이 된 시카고 축산물 가공 공장에서 나온 통조림을 풍자하는 그림 엽서 / docstech.org, wikimedia

이후 싱클레어는 한 인터뷰에서 씁쓸하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죠. “나는 대중의 심장을 저격하려 했지만, 위장을 저격하고 말았다”

이 유명한 에피소드는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되곤 합니다만, 한 사람이 다른 상황에 있는 사람의 고통을 제대로 전달·이해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예시이자, ‘충격적인 고발’이 (눈길을 끄는 것과는 별개로)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는 어쩌면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 이야깃거리라고 저는 생각해왔습니다.

문제는 - 현실에선 눈길을 끄는 보도가 단순히 ‘엉뚱한 방향’으로 물길을 흐르게 하는 경우보다도, 외려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겠죠.

저널리스트 김인정이 쓴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그가 십수년 기자생활을 하며, 직접 사건 현장에서 다양한 ‘남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 온 흔적입니다.

얼핏 제목을 보면,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나쁘니까 구경하지 말자!”라고 말할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보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사려 깊은 구경꾼이 되자!” 쪽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일단 우리가 남의 고통에 대하여 어느정도 ‘구경꾼’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남의 고통을 바라보는 것을 멈추지 않고 최대한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고 행동한다면 우리는 사회를 더 낫게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래 대목은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생각해본다면 타자에 대해 생각하려는 시도는 대상화의 위험성을 늘 내포하고 있다. 그러니 대상화를 무작정 멈추라는 말은 함정이다. 타인에 대한 말하기가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도울 기회를 알지도 못한 채 지나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이 구경이 될 수 있다는 걱정에 빠져서 고통을 보는 일 자체를 멈춘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인간성 실패의 시작일 것이다 […] 구경으로 시작됐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멈추지 말기를. 여력이 된다면 포기하지 말고 움직이기를. 행동이 절대선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를. 시급한 진단의 효용과 오용을 잊지 않은 채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사유하기를…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이하 동일)

저는 이 책을 곱씹으며, ‘남의 고통’ 보기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인상적인 아이디어를 꼽아보았습니다.

1.단지 ‘자극적이고 반복적인 충격’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2.타인의 고통을 보는 건, 원래 까다로운 일이며 ‘잘’ 해야 한다

첫째,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는 말이 있죠.

대체로 어떤 ‘뉴스’가 이목을 끄는지는, 그 사안의 중요성과는 큰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고 반복되는 문제지만, 단지 ‘특이한 부분이 없다’ ‘흥미롭지 않다’ 등의 이유로 ‘뉴스’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반면, 어떤 뉴스가 독자를 ‘감정적으로 격하게 반응하게 할 수록’ 큰 ‘뉴스가치’를 갖습니다. 이는 ‘남의 고통’과 관련된 사건 뉴스에서도 마찬가진데요. 어떤 사회적 문제를 다루든 애절한 사연이 있을 수록, 사건의 묘사가 자세할수록, 눈에 보이는 적을 세워둘 수록 사람들은 크게 분노합니다.

문제는 이처럼 쏟아져내리는 남의 고통 이야기 가운데 죄책감만 쌓여가고, 대체 무엇이 진짜 중요한 문제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거죠.

고통을 판다. 고통을 본다. 고통은 눈길을 끌고 […] 때로는 돈이 된다. 고통이 자주 구경거리가 됐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지만, 이제 고통은 콘텐츠가 됐다 […] 고통의 포르노 운운하기 전에 인터넷이 불러온 진짜 문제는 우리를 기다리는 죄책감의 총량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고통을 보고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각은 죄책감과 무력감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사건 바깥에서 비난하는 무고한 위치에 자신을 놓고 정의감에 빠져들거나, 거리감을 핑계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하기도 쉽다 […] 우선순위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상황에서는 무엇이 더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고통인지를 식별해내는 것부터가 노동이다.

이런 ‘충격’ ‘속보’들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고 화나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누군가의 처우에 도움이 되는 일은 적습니다. 맥락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시청자들은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들을 하품을 하며 죄책감을 갖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죠.

<fig.3> <고통 구경하는 사회> 책 표지 (왼쪽) 눈길을 끄는 ‘타인의 고통’은 문제 해결이라든지 피해 반복의 목적보다는 자극적으로 재구성되고 반복되곤 합니다. / 웨일북, KBS

이어, ‘타인의 고통을 보는 건 원래부터 까다로운 일이며 ‘잘’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점과 관련해섭니다.

실은 뉴스에서 무작정 자극적인 디테일을 쭉 짜버리고, 마치 전화번호부나 조사 보고서처럼 심심하게만 다루는 것도 답이 아닙니다. 왜냐면 애초에 사건 뉴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리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거니까요. 어떤 문제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공론화가 필요하죠.

예를 들어 저자는 미국에서 벌어진 아시아인 대상 린치 사건을 보도할 때, 범죄 CCTV를 공유할지 고민합니다. 이 밖에도 그는 치열하게 5·18유가족, 홍콩 민주화 시위자, 마약중독자 등을 카메라에 담으며 고민하는데요.

‘잘’이라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저자는 중요한 제안을 합니다. 남의 고통을 볼 때 되도록 ‘충격’보다도 ‘맥락’을 살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정말 약자를 위해서 말하고 있나 […] 뉴스라는 텍스트는 무엇을 유도해야 할까. 기자는 사진과 영상, 글을 통해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을 나란하게 독해해 주어야 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누가 이런 일을 일어나게 했고,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인지 말이다. 감춤이 없어야 하고 맥락을 읽어야 하고 불편부당한 정보를 줘야 한다.

결말 부분에서 - 어찌보면 좀 심심해보일지 모르는 이 대목을 읽으며, 이상하게도 열렬히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저는 ‘맥락’을 살피자는 것이 결코 ‘뜬구름 잡자’는 결론도 아닐 뿐더러, ‘노잼 얘기’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겉보기엔 좀 지루하고 심심해보일지라도요. 각자 뚝 뚝 떨어져있는 사건 간의 맥락을 만들고, 배경을 이해하고 나와 연결짓고 탐구해보는 일은 흥미롭고 유익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챕터에 마저 적어보겠습니다.

【3.‘충격’이 아닌 ‘맥락’으로 : <아마존 디스토피아>】

‘세계 1위 유통 공룡기업 아마존이 미국을 지배하게 된 상황에 대한 탐사보도 기자의 본격 르포!’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아마존 물류센터에 직접 노동자로 취직해보고 잔뜩 쌓인 짐을 나르고 흠뻑 진이 빠지고 화장실에 못 가는 고통을 겪고 관리자의 집요한 괴롭힘을 겪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가 노숙자가 된 모습을 관찰하고, 본사 잠입 취재를 해서 비밀 정보를 빼내고... 이런 종류의 영화처럼 왠지 모르게 숨 막히는 - 흥미진진한 장면들이 떠오르실 수 있을텐데요.

‘거대 플랫폼 기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는 부제를 단 탐사전문기자 알렉 맥길리스의 책 <아마존 디스토피아fulfillment>는, 흥미롭게도 이런 이미지를 고스란히 정반대로 뒤집어놓은 것 같은 종류의 책입니다.

즉 간단히 말하자면, 흥미롭게도 ‘노잼’입니다.

다만 여기서의 ‘노잼’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숨 막히는 스펙터클이나 도파민 뿜뿜이 없다는 의미에서고요. 이 책은 “아마존이라는 대표 선수를 통해” 오늘날 전세계를 뒤덮는 빈부격차의 맥락을 입체적이고 섬세하게 짚어냅니다.

<아마존 디스토피아>엔 통상 다른 노동 기업 르포와는 달리 충격적인 폭로나 굉장히 심금을 울리는 특별한 사연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신 책이 주목하고 있는 지점을 한 마디로 추려보자면, 아마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지, 평범하게 살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분투했던 작은 사람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일터를 잃고 공동체와 삶을 잃어가게 되었는가...’

<fig.4> <아마존 디스토피아Fulfillment> 책 표지 (왼쪽)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매체 프로퍼블리카의 선임기자 알렉 맥그리스 / 사월의책, CCBC

저자는 그저 담담한 어조로 어떻게 20세기의 적당히 보람찬 일과 동네 이웃, 가게, 친구들과 함께 가족을 가지고 건실하게 살았던 중산층이 몰락하고 텅 빈 도시의 시무룩하고 우울한 워킹푸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는지에 대해 구조적인 요인들(노동조건 역사, 로비, 안보산업 등)에 대해 입체적으로 말하고 있는데요.

*워킹 푸어working poor=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임금 등의 이유로 가난한 사람들

저자에 따르면 십수 년간 미국의 모든 사람과 상품, 소매점, 공동체, 일자리, 지역 인프라 등은 빠르게 아마존으로 빨려들어갔습니다.2) 마치 블랙홀처럼요. 같은 업종, 품목에 아마존이 발을 들여놓으면 초토화된다는 의미의 ‘아마존 이펙트Amazon Effect’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였죠. 실제 이 책에선 직접 발로 뛰어 지역 관공서에 볼펜과 사무용품을 영업하던 납품업자, 소매업자, 노동자 등이 기존의 생업, 일자리를 잃고 곤란한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신규 투자는 일부 주에만 집중되고, 이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조하면서 지역,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계층의 사람들끼리는 아예 ‘사는 세계’ 자체가 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2019년에는 전체 벤처캐피탈 자금의 70%가 캘리포니아, 뉴욕, 매사추세츠주 이렇게 단 세개 주로 흘러가고 있었다 […] 지역 간 불평등은 일군의 지역과 또 다른 일군의 지역이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한쪽 세계가 마약성 진통제 중독으로 난리를 겪는 동안 다른 쪽 세계는 명문대 입시 부정으로 난리가 났다. 이토록 이질적인 맥락에 두루 적용될 수 있는 전국 차원의 정책을 합의하기란 지극히 어려웠다. ‘주거 문제’가 한쪽에서는 쇠락과 공동화를 의미했고, 다른 쪽에서는 치솟는 집값과 젠트리피케이션 이슈를 의미했다.

-알렉 맥길리스, <아마존 디스토피아>(이하 동일)

그런데 궁금할 수 있습니다.

왜 하필 ‘아마존’이지? 아마존이 이 모든 일(일자리 파괴, 소매점 몰락, 중산층 몰락, 양극화...)의 ‘원흉’이니까 아마존만 없애면 되는 건가?

저자는 고개를 젓습니다. 다만,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하죠.

아마존은 미국과 미국이 어떠한 상태로 변모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이상적인 틀이다. 오늘날 미국을 변모시키고 있는 많은 요인을 대표하고 있어서 그러한 요인을 설명하는 데 유용하기 때문이다[...] 극단적인 부의 불평등 [...] 노동의 변모 [...] 이들은 도시의 외곽에서, 종종 안정적이지 않은 근무시간과 근무일정으로, 단순화된 노동을 고립적인 방식으로 수행한다 [...] 시민적 유대가 어떻게 해체되고 있는지도 살펴볼 수 있다 [...] 또한 아마존은 우리가 소비하는 방식, 즉 우리가 스스로를 부양하고 충족시키는 방식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가장 근본적인 수준에서 변모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런 대목을 읽고보면, 저자가 다루는 것은 비단 미국-아마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존식 모델을 도입하고 있는 기업, 국가에서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는, 나타날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양상은 조금 다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어느정도 현재진행형이라고도 볼 수 있고요.

저는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의 타래를 엮으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fig.5> 아마존 제2본사가 위치한, 내부에 공원, 소매점 등을 갖춘 크리스탈 시티. 내부엔 마치 '성채'처럼 다양한 음식점, 운동센터, 공원 등이 잘 조성되어있지만 바깥으로 조금만 나가보면 텅빈 상점가가 나온다고 합니다. (왼쪽·링크) 워싱턴DC에서 불과 60km 떨어진 볼티모어의 빈 집들. 2016년에는 한 남성이 거리에 세워둔 차에서 음악을 듣다가 낡은 집의 벽돌이 무너지는 바람에 사망하는 일이 있을 정도로 이 지역의 많은 집들은 낙후되어 있다고 합니다. / marketplace

이 책은 다양한 현상을 짚고 있기 때문에 오늘 레터에서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을 것입니다만 - ‘맥락’이라는 키워드를 붙들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 생각보다 많은 ‘겉으로는 완전 별개의 것으로 보이는 문제(기사)들’이 맥락을 파고 들어가니 서로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최근 우리나라의 방송 다큐멘터리에서도 미국의 ‘급증한 마약 문제(오피오이드계, 펜타닐 등)’ ‘노숙인, 치안(가게 습격)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은데요. 자초지종을 잘 모르는 저는 이런 영상을 보고 충격을 받고선 ‘미국은 마약 문제가 심각하구나...’ 정도로 생각해왔지만, 이 책을 읽다보니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고 중독되기 쉬운 환경, 코로나 이후 한층 더 아마존으로 쏠린 독점적 유통, 소매점, 지역 일자리와 지역공동체의 소멸, 미래에 대한 막막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회운동가 케이티 윌슨은 아래와 같이 말하죠.

‘결국 노숙인 위기는 그 하나하나가 사회 질서가 파탄 났음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경향이 수렴하면서 발생했다. 치솟는 주거비와 정체된 임금, 수십 년간 이어진 사회 안전망 프로그램의 축소, 우울증과 사회적 고립과 정신질환의 확산, 약물 자가복용과 오피오이드 과잉 처방, 지역 공동체와 가족이라는 지원 네트워크의 훼손, 대대적인 수감과 체계적인 인종차별. 인도와 자전거 도로에 늘어선 노숙인의 텐트촌과 보도에서 총을 난사하는 여성은 공공 공간을 잠식한 사회적 재앙을 도저히 간과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보여준다 [...] 밀레니얼 세대는 이런 현실을 익숙하게 여긴다. 이것이 그들이 알아온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임박한 환경 재앙의 그늘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불안정한 직업 전망 하에서 성인기에 접어들었으며 안정성에 대한 기대를 가져본 적이 없다...’

또한 이 책에서는 오늘날과 대비해서 ‘20세기의 좋았던 중산층들의 날들’을 반복적으로 묘사하기도 합니다. 확실히 그 때에는 단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데에 오늘날처럼 큰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기술과 노력으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고, 자신이 보람과 뿌듯함을 가질만한 일자리를 얻었고, 적당한 임금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었고요. 거리의 소매점 주인들과도 서로 친했고, 힘든 일이 있을 때에는 서로의 사정을 봐주었죠.

현재는 쇠락한 볼티모어(스패로스 포인트)의 주민들은 20세기 중반 무렵을 아래와 같이 회상합니다.

“육체 노동은 좋은 자극을 주는 도전이 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할 때 이 일을 최고로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같은 것이 듭니다 [...] 이 일(제철)은 긴장해서 에너지를 최고조 상태로 두어야만 해낼 수 있는 많은 도전이 있는 일입니다” [...] 아이들을 돌보는 건 온 마을의 일이었고 [...] 시어도어 패터슨은 "우리는 서로를 돌보았고 서로 나누었다"고 말했다. 로이 크래그웨이는 "지역공동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밀했다"고 말했다. 샬럿 케이저 하비는 "모두가 충분한 음식, 입을 만한 옷, 선량한 도덕심이 있었고, 술은 적당히 즐겼다"고 말했다. 샬럿은 겨울 아침이면 개울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버지를 바라보곤 했는데 아버지가 "정말 우아하게 스케이트를 타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불안정하게 떠밀리고, 40년 전과 별 차이 없는 임금을 받고,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 소모품처럼 내던져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임금을 적게 받으니 물건을 살 돈이 없고, ‘최저가’가 아닌 상품은 경쟁할 수가 없게 되고, 오로지 달러스토어(우리나라의 다이소)나 할인마트만이 살아남게 되죠.

<fig.6> 포드 시스템의 종말 (왼쪽) 최근 경기가 안좋아지며 미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1달러샵.(링크) 역사적으로 극도의 불황기에 특히 최저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슈퍼마켓, 할인마트 등이 번성했다고 합니다. / Ford media, Bloomberg

이유는 단지 아마존이 너무 나빠서일까요?

실은 애초에 20세기에 중산층이 땅바닥에서 저절로 탄생한 게 아니었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20세기의 중산층은 ‘의도적인 노력, 균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20세기 초중반에는 ‘천사 고용주’만 있었을리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도 역시 대다수의 공장주들은 최대한 적은 임금을 주고 늦게까지, 돈을 아끼기 위해 심지어 어린 아이들에게도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그것은 부당하다! 우리를 사람답게 대하라!”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외침, 정부의 정책으로 얻어낸 것이었죠.

하지만 오늘날엔 과거 중산층을 만들어냈던 안전장치들이 사실상 거의 다 유명무실해져버린(일부에게만 남은) 상황입니다.

* ”여기에는 68인치 열연강재 공장이 있었고, 저 위쪽에는 주석 공장, 이쪽에는 파이프 공장이 있었어.” […] 한 세기도 더 전에 프레더릭 우드(*공장주)는 ‘선동’이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명시한 ‘고용계약서’에 노동자들이 서명하도록 강요했다. 하지만 그 이후 몇십년간 노동자들은 더 나은 임금과 더 안전한 환경을 위해 스스로를 조직할 권리를 갖고자 싸웠고, 그 권리를 쟁취했다. 전보다 안전한 환경과 높은 임금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그와 함께 중산층의 생활수준으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존엄과 동등한 상대로서 자신의 노동에 대해 협상할 수 있다는 데서 오는 존엄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 물류센터는 모든 것을 드러나지 않게 가리며, 그럼으로써 [불편한 문제를 알고 싶지 않은] 소비자들의 무관심을 교사한다.

* 경영학 교수 스콧 갤러웨이는 "죽어가고 있는 것은 상점이 아니라 중산층이고, 이는 다시 한때 잘 나갔던 세대의 사람들과 그들의 지역을 대상으로 운영되었던 기업들이 죽어가게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 2019년 8월 오프라인 세계는 새로이 놀라운 문턱 하나를 넘게 되는데, 지난 6개월간 신규로 문을 연 소매점의 절반가량이 1달러숍과 할인식료품점이었다 [...] 이제 노동자들은 임금이 너무 적어서 가장 싼 저가 매장에서 파는 가장 싼 물건들밖에 살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을 덮고서는, 우리가 어떤 사건들을 바라볼 때 맥락을 충분히 천천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우선 사람은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데이턴의 골판지 상자 공장 노동자 토드 스왈로스는 젊었을 때 거의 열개에 이르는 임시직을 전전하다 결국 골판지 공장에서 적은 돈을 받고 일합니다. 토드는 2016년 트럼프가 “우리는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주민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연설하자 열렬히 환호하며 선거날이 다가와 트럼프를 찍기를 학수고대했습니다. 물론 트럼프의 주장은(일자리 필요하다=이주민을 몰아내자) 궤변입니다. 그럼에도 적어도 트럼프는 쇠락한 도시의 사람들이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짚고 있었습니다.

저는 토드의 사연을 읽는 내내, 과연 의료보험이 있고, 높은 급료를 받는 안정적인 일자리의 정규직이 그를 ‘혐오자’라고 손가락질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골똘히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마존은 사람들을 ‘소비자’로만 여기는데 - 사람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집에서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거리에선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울 수 있고 치안을 함께 유지하는 동료 시민이고, 국가의 납세자이며, 일터에선 함께 힘을 합해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의 삶은 애초에 ‘1분짜리’ 기사나 영상으로 해석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진절머리를 내고 외롭게 홀로 쪼개어진 문제를 끌어안고 있는 이유는, 이처럼 서로가 얽혀있는 맥락을 충분히 살필 여유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실은 많은 ‘남의 문제(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나의 문제’이기도 한데요.

그리고, 얼핏 보아 ‘충격’적인 뉴스가 파급력이 크고 곧장 행동을 하는 사람이 많아보이지만, 진정 장기적으로 무언가를 바꾸는 힘은 맥락을 곰곰 살피는 사람들의 우직한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

“아마존은 명백한 고객 중심적인 회사입니다.” - 아마존의 교육 담당자

”우리는 단지 소비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이고 노동자이고 생산자이고 납세자이고 시민입니다. 단지 원클릭 결제를 넘어서는 욕구와 욕망을 가진 존재입니다.” - 텍사스주 (전) 볼펜 판매 영업사원 마이클 터커

2) 물론 현재 아마존이 독점적 지위를 바탕으로 부당한 효과를 낳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이모든것이 아마존의 문제라고 단정짓고 악마화하는 방식으로만 이야기를 이끌어가진 않습니다. 아마존에 의해 초토화된 납품업자의 아들은 제프 베조스를 존경하고 아마존 서비스에 입점해 '혁신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하기도 하죠. 아마존 외에도 구글, 페이스북 등이 독점적 플랫폼을 활용해 그 광고수익 등을 독점하고 있기도 합니다.

【4.맺음말】

오늘 레터에선 ‘충격’과 ‘노잼’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해찰해 보았는데요.

실은 이 두가지는 서로 아주 상반되는 건 아닙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를 쓴 김인정 기자의 말대로, 분명히 누군가의 비극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공론화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감정적인 호소 역시 필요하죠.(애초에 감정과 사실이 그렇게까지 분리된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하지만 동시에 ‘맥락’을 계속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노잼’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결국 오늘 레터를 통해 제가 해보고 싶었던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오늘날엔, 틀에 박힌 불쌍한 피해자, 천편일률적인 ‘경악하기 위한 경악’ ‘충격받기 위한 충격’ 사연 등이 더 ‘노잼’이 아닐까요?

이처럼 맥락 속에서 우리가 사안들을 바라보고, 조금 더 침착하게 곰곰 생각해보고 해찰해보면서 우리는 좀 더 사회를 낫게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결국 '남의 고통'이라고 생각했던 문제는 자연스럽게 나와 이어지고, 또 ‘우리’의 문제가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 사족같긴 하지만 - 아마도 인스피아에서 그간 제가 ‘책’을 지팡이 삼아 어떤 이야깃거리를 다루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어쩌면 그 이유는 제가 책을 몹시 좋아하는 ‘책 덕후’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 단지, 복잡한 오솔길을 해찰하며 ‘맥락’을 곰곰 살펴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너무 빠르고 번잡한 말들로는 결코 바라볼 수 없는, ‘우리’의 이야깃거리들을 구석에서 소중하게 줍기 위해서요.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알렉 맥길리스, 김승진 옮김, 『아마존 디스토피아』, 사월의책, 2024.

-이 책의 영어 원제는 'Fulfillment'입니다. 제가 미국의 정치, 경제 상황을 잘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기사와 유튜브 등을 검색하며 읽었고요. Goodreads에 이 책에 대한 많은 다양한 현지인들의 사려깊은 서평들이 있고 여기서도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링크) 그 중에서도 특히 공감됐던 리뷰들은, 이 책이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심심하고 한발 떨어져 관망(찰)하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아마 미국 현지인들도 기자가 '아마존 제국'을 다룬다는 컨셉의 이 책이 꽤나 긴박한 BGM을 깐 느낌일 거라고 생각했는가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미 중소도시의 '공동체'가 어떻게 와해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인데요. 일자리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거리는 그야말로 무법지대라고 할 만한데, 미국의 경우 팬더믹 이후 훨씬 '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해졌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의 인구밀도가 워낙 높다보니 아직 (적어도 수도권 안에서는) 공동화 현상을 느끼기 어렵긴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인구밀도가 높아서 보이는 착시일 뿐 옛날부터 이미 상당부분 함께 누릴 수 있는 '제3의 공간'은 공동화가 진행이 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요. 여튼, 미국의 역사나 도시, 산업, 노동 등에 대해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서 색다른 영감을 이끌어내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인정, 『고통 구경하는 사회』, 웨일북, 2023.

-광주MBC 기자 출신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김인정씨가 ‘고통 구경’에 대해 쓴 책입니다. 우리는 흔히 ‘강 건너 불구경’이라는 말을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곤 하고, 남의 불행을 저런식으로 팝콘을 먹으며 구경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어느정도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과정에서는 오해와 대상화가 생길 수밖에 없으며, 그것을 감안하고라도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고통을 제대로 바라보려는 노력을 지속해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분량 관계상 구체적인 예시를 많이 싣지는 못했지만, 본문에 저자가 기자생활 동안 겪은 흥미로운 사례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만약 직접 내가 그 상황에서 기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라고 궁리해보며 읽어봐도 좋을 듯합니다. 실은 저도 이 책을 읽으면서 과거 소위 ‘힘든 분들’을 인터뷰할 때의 경험들이 떠오르곤 했는데요. 처음엔 측은한 마음으로 갔지만, 정작 가서 ‘상상 속 힘든 분들’을 인터뷰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당연하게도 제각기의 취미와 고집, 삶과 욕망이 있는 사람들이었죠.

업튼 싱클레어, 채광석 옮김, 『정글』, 페이퍼로드, 2009.

-실은 이 소설을 읽게 된 계기는, 다른 책들에서 “나는 대중의 심장을 가격하려고 했는데, 위장을 가격하게 됐다”는 말이 인용된 것을 여러번 읽게 되어서였습니다. 저 문장은 여러모로 굉장히 유명한데요. 당시에는 아주 뜨거운 소설이었고, 지금 읽어도 그 묵중하고 가슴이 막힐 것 같은 리얼리즘 묘사는 위압적입니다만 - 이 책을 곰곰 '끝까지' 읽어가다 보면 대중적 '오해'의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이 책의 한국어판이 나오게 된 궤적도 꽤 흥미롭습니다.(후기 참조)

사족이지만, 그는 1878년에 태어나 90세인 1968에 사망했고 죽을 때까지 총 90여편의 소설을 꾸준히 썼는데요. 결국 역사에는 자신이 20대 햇병아리일 때 썼던 소설만이 대표작으로 남았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합니다. 그의 독특한 일생을 바라볼 수 있는 뉴요커의 글을 첨부합니다(링크)

박미숙 외, 『마지막 일터, 쿠팡을 해지합니다』, 민중의소리, 2022.

-<아마존 디스토피아>가 미국의 상황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의 비슷한 책이 있을까 해서 살펴보았던 책입니다. 아무래도 미국과 우리나라는 상황이 다르다보니 + 책의 접근 방향이 다르다보니 다소 차이는 있습니다만, 두 책의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단지 개인의 최루성, 안타까운 사연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을 바꾸기 위한 제도적, 구조적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레터의 본문에서는 '노동'이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기 때문에 직접 다루지 않았습니다만, 추후 관련 주제를 다룰 때에 함께 다루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누가 ‘최저가’를 거절할 수 있겠는가?

독서시간: 약 9분 / 글자수: 약 4000자

🖍글 속 한 문장

“값싼 가격은 값싼 노동과 값싼 에너지와 값싼 물류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이제 끝나가고 있다. 이 책은 착한 가격이 실제로는 나쁜 가격일 수도 있다는 사실, 그 착한 가격은 우리가 상품의 가격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다...‘월마트 이펙트’에 따르면 연간 소득이 5만2천달러인 가구의 경우 식료품 구입비가 한 달에 500달러 정도 든다. 그런데 월마트에서 쇼핑을 하면 425달러 정도로 줄어든다. 달마다 75달러를 아끼면 1년에 900달러, 1주일 급여와 맞먹는다. 식료품만 계산했을 때 100만원 이상을 절약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누가 이걸 거절할 수 있겠는가.”

👤김스피의 블라블라

<가격 파괴의 저주>와 <월마트 이펙트>를 엮어 쓴 서평입니다. 책이 나온 시점(현지 기준)이 2006년쯤이다보니 '최저가 유통'의 핵심에 월마트를 두고 풀어가고 있는 책들입니다.

역사적으로 불황일 때마다 최저가 쇼핑에 대한 욕구가 강해져갔고, 거의 모든 물건에 대한 가격을 실시간으로 비교할 수 있는 온라인 쇼핑의 시대+신속배송의 시대인 오늘날 한층 경쟁이 격렬해지고 있습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최저가'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길게 쓰진 않았지만, <아마존 디스토피아>를 읽다보면 계속 마음 한구석에 찜찜하게 지속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처우를 위해 오늘날 소비자들은 과연 최저가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런데 어쩌면 이는 잘못된 비교일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최저가'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레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래퍼 출신의 ‘힙’한 아마존 노조위원장

독서시간: 약 12분 / 글자수: 약 6600자

🖍글 속 한 문장

“코로나19 팬데믹과 해고가 내 삶을 바꿨다. 원래 노조를 만들려는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해고 뒤 다른 노동자에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싸워야겠다고 생각했다...우리는 시급 30달러, 연금, 고용안정, 일터의 안전, 더 나은 병가제도 등을 위해 싸우고 있다. 아마존은 매일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다. 물류창고에선 산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하루 10~12시간인 장시간 노동, 짧은 휴식시간도 문제다. 아울러 배우자·자녀를 위한 학자금 지원, 공정한 승진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기본적 요구 중 일부이고, 궁극적으론 더 나은 삶의 질을 보장받기를 원한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아마존 30년 무노조 경영을 깨고 지난 2022년 최초로 뉴욕의 아마존 물류창고 JFK8 노조를 만든 크리스 스몰스 인터뷰입니다. 그는 래퍼 출신으로, 팬데믹으로 인해 생활에 곤란을 겪던 중 아마존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레터에서 다룬 <아마존 디스토피아> 책에 따르면 아마존은 ‘마치 오늘날 대부분의 기업은 너무 완벽해서 노조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홍보하곤 하는데요. 이는 아마존 뿐 아니라 오늘날 많은 대기업, 플랫폼 기업들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MZ세대들 사이 노조에 대한 인식이 점차 바뀌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요새 노조에 대해 궁금하시다면, 경향신문의 2023년 기획 기사 ‘노조 왜 해? 물으신다면’(목차)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1748번의 죽음

인터랙티브 페이지

🖍글 속 한 문장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매년 2000명가량의 노동자가 사고나 질병으로 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계는 숫자 이상의 의미를 전하지 못합니다. 왜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었는지 잘 알려지지도 않을 뿐더러, 보도되더라도 금세 잊혀집니다. 매일 ‘김용균’이 있었고, 내일도 ‘김용균’이 있을 것이지만 한국사회는 노동자의 죽음에 무감각해졌습니다.

노동자들의 죽음이 무의미한 통계숫자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고로 숨진 노동자 한 명, 한 명의 죽음을 기록했습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경향신문의 2019년 기획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포그래픽 페이지입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에서 저자가 - ‘중요하고 반드시 해결돼야 하는 문제지만 반복되는 문제라 좀처럼 주목을 모으지 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던 산업재해에 대해, 참신한 방법으로 문제를 환기했다고 평한 기획입니다.

분명히 어떤 사건에 대한 사연이 중요한 경우도 있습니다만, 어떻게 하면 최대한 오해 없이 실질적인 문제 해결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저자는 매번 저울질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고통의 저널리즘이 안방에서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볼거리로 전락해 남의 고통을 무례하고 폭력적으로 소비하는 유해한 저널리즘이 될지, 인간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끔 하고 사회적 공감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윤리적 저널리즘이 될지가 이 개별의 저울질에 달려있어서다. 이 저울질이 끝내 성공할지는 한 고통이 발생하고 보도가 시작되는 순간마다 매번, 정말이지 매번, 미지의 영역이다.”-<고통 구경하는 사회> 중

가짜뉴스 검색하려다 허위 정보 믿는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500자

🖍글 속 한 문장

네이처는 “연구팀의 실험은 검색엔진을 통해 뉴스를 평가하는 것이 오히려 저품질 뉴스에 대한 신뢰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연구팀은 "잘못된 정보를 평가하기 위해 검색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낮은 품질의 정보 출처로부터 확증적인 증거를 얻을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실은 오늘 레터를 쓰기 전까지는, 머릿말에서 다룬 영상("T사의 물류창고"라는 설명이 붙은 채 x에서 2만여 리트윗이 되고 다수의 커뮤니티에 전파되었던)이 T사의 물류창고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레터를 쓰기 위해 정확한 틱톡의 원출처를 영어/중국어로 찾던 중 팩트체크 게시물을 몇개 접하게 되었고, 현재는 x에 게시된 영상에는 주의 딱지가 붙어있는 상태입니다. 영상 자체는, 코로나 이전 우편국 등 다른 물류작업장에서 찍힌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씁쓸한 것은, 이미 거의 한달간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 영상이 게재되어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는 점입니다. 딥페이크가 아닌, 단지 다른 영상이었는데 이정도로 사람들이 쉽게 속는다면 딥페이크 시대엔 과연 우리가 인터넷에서 보는 것 가운데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요?

👥‘베르나르 뷔페’ 전시에 연구자님을 초대합니다.

프랑스 전후 미술계의 대표적인 화가 베르나르 뷔페(1928~1999) 전시회(베르나르 뷔페-천재의 빛 : 광대의 그림자) 전시 티켓을 드립니다.(공식 안내페이지)

베르나르 뷔페는 생전 ‘비운의 천재’이자 ‘피카소의 대항마’로 불렸다고 하는데요. 전시에선 2차대전 이후 파리의 불안하고 황폐한 분위기 속에서 피어난, 그의 평생의 그림을 향한 열정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베르나르 뷔페와 관련해서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싶으시면 아래 기사를 참조해주세요.

✏️피카소가 ‘질투’하고 워홀이 극찬한 작가···뷔페의 세계로 한 발 더 가까이

✏️4m ‘단테의 신곡’과 ‘잔다르크 목소리’···뷔페의 강렬함에 빠져든다

* 장소 및 전시 기간 :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 24.4.26~24.9.10

* 추첨인원 : 10명(1인당 2매)

* 응모방법 : 하단 파란색 버튼(베르나르 뷔페 전시회 응모하기)을 누르시고, 구글폼에 티켓을 받으실 성함/연락처/주소(*필수)를 적어주세요.

6/16(일)까지 응모를 받고, 추첨 후 오는 6/19(수)일자 뉴스레터에 당첨자 공지 예정입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실물 티켓 발송을 위한 개인정보(성함/연락처/주소)가 완전하게 기입되지 않으면 추첨 대상에서 제외됩니다.

※해당 전시 추첨을 위한 개인정보는 따로 수집되지 않으며, 당첨자 추첨 및 티켓 발송 이후 일체 폐기됩니다.

👥베르나르 뷔페 전시회 응모하기

👥지난 회차의 반응

지난 회차(‘내 책장의 불청객들 : 코끼리 기념품과 책[5월의김스피]’)에 대한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모아 소개합니다. 편지로 다양한 의견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 버튼을 누르면 연구자님들의 반응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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