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레드에선 ‘흥미로운 글’을 찾을 수 있을까?

2023. 7. 18.

스레드에선 ‘흥미로운 글’을 찾을 수 있을까?

‘300 arguments’ and ‘Good arguments’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90), 2023.7.19,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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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소통, 스레드, SNS, 읽기, 토론

1.머리말
2.‘SNS글’이란 무엇인가 #진정성 #나 : <300개의 단상>
3.들을 ‘필요’ 없는 세상 : <디베이터>
4.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저는 휴재 기간을 잘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평소 인스피아를 위해 읽고 쓸 때와는 조금 다른 패턴으로 읽고, 쓰거나 이리저리 해찰하고 ‘멍’을 때리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스피아를 시작할 때쯤 되니 마치 ‘인스피아 모드’가 되듯 머리에 전깃불이 반짝 켜지는 느낌입니다 - 실은 ‘반짝 켜진다’는 표현을 썼지만, ‘전환’이라는 게 그처럼 순조로운 일인지, 그리고 인스피아 모드라는 것이 불이 반짝 켜지는 모드인지는 잘 모르겠긴 합니다. 어쩌면 평소보다 더 우둔하게 책을 파고들게 되는, 불이 ‘반짝 꺼지는’ 모드일지도요.

이제 7월도 중순이라 완연한 여름, 그리고 장마철입니다. 국내 곳곳에서 수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수마에 목숨을 잃으신 분들의 명복을, 그리고 피해 지역 주민분들의 조속한 피해 복구와 안전을 기원합니다.

지난 7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을 운영하는 메타가 새로운 SNS 플랫폼인 ‘스레드(Threads)’를 출시했습니다.

챗GPT보다도 무서운 속도로 신규 가입자가 늘어서, 단 5일만에 무려 1억 가입자를 돌파했다고 합니다.(링크)

이 사건은 마치 호수 위로 돌덩이가 ‘풍’ 빠져든듯 여러 방면에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트위터 ‘복붙’ 문제, 테크부호들의 ‘결투’, 개인정보 이슈 등·링크) 저 또한 스레드에 가입한 뒤 그간 눈팅을 하고, 관련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았는데요.

관련 정보들 중에서도 제 눈에 걸린 단어가 있었습니다. ‘소통’이라는, 무난하고 심심한 말입니다.

저커버그는 스레드를 세상에 내놓으면서 “소통을 위한 개방적이고 친밀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습니다.

<fig.1> 지난 7일 출시되어 5일만에 1억 사용자를 돌파한 스레드Threads. 인스타그램과의 연동으로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는 점, 일론 머스크와의 '설전'으로 인한 이목 집중 등의 요소가 초기 흥행 성공의 비결입니다. (왼쪽) 마크 저커버그의 모습 / AP연합뉴스

묘하게 이 심심한 단어가 눈에 걸리게 된 이유는 아마도 다음과 같습니다.

꼭 최근의 일이 아니더라도, SNS에서 흥미로운 읽기, 소통 경험을 한지가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1)

이는 SNS에 ‘쓸모없는’ 정보가 많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저는 기본적으로 쓸모없고 재미난 것을 해찰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아니, 실은 쓸모같은 건 없는 편이 대체로 더 좋습니다. 그런데 SNS에서 쓸모가 있든 없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만난 경험이 너무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죠. (간혹 그런 걸 만난다고 해도 보통은 다른 기사나 책의 ‘소개’의 형태였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이어집니다.

우리는 SNS 세계의 ‘소통’이라는 말을 마치 인맥 파티라든지 동호회 모임의 단체사진처럼 생각하곤 하는데, 실은 소통에서 ‘읽기’를 빼놓을 수 있는가? 하고요.

기본적으로 소통이란 남의 생각을 듣고, 또 말하는 과정인데 만약 SNS가 ‘소통’은 잘 되는데 ‘읽기 경험’은 엉망이라고 하면 그건 마치 단팥빵에서 단팥은 맛이 엉망이지만 대체로 좋은 단팥빵이라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하면서 제게 단팥빵을 내민다면 사양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기회에 ‘SNS에서의 쓰기, 읽기’ 경험에 대해 해찰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딱히 스레드라든지 아니면 어떤 특정 SNS 플랫폼의 특징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전반적인 소통 형태에 대한 해찰입니다.

<300개의 단상>(세라 망구소)과 <디베이터>(서보현)를 지팡이 삼아보았습니다.

1)일론 머스크는 지난 6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고통을 숨기는 인스타그램의 거짓 행복에 빠지는 것보다 트위터에서 낯선 사람의 공격을 받는 것이 훨씬 낫다(링크)"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인스타그램을 비판할 목적이었던 이 게시글을 보며 새삼 그간 SNS에서의 소통이 과연 좋은 소통이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2.‘SNS글’이란 무엇인가 #진정성 #나 : <300개의 단상>】

‘SNS글’이라곤 했지만, 실은 SNS에도 수많은 종류의 글이 있는데요.

에세이처럼 자신의 생각을 진솔하게 표현한다는 측면에서 전반적인 특징을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추려볼 수 있습니다.

1.나를 주어로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한다 (‘나’ 중심의 글)
2.남을 의식하고 씀, 대체로 ‘불특정다수’를 향한 고백체 (Not 일기)
3.비격식, 진솔함을 중시함 (진정성)

이 중에서도 역시 ‘진솔함’은 SNS의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한데요. 트위터 등 SNS에서 우리는 결코 공식 인터뷰나 기자회견, 책에선 말하지 않을 것 같은 유명인들의 ‘헛소리’ ‘일상 수다’를 들으며, 그를 마치 옆집 이웃처럼 친근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fig.2> SNS의 글엔 누군가가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이미지가 있습니다. '1인 영상 일기'라는 컨셉을 추구했던 유튜브의 초기 슬로건은 '당신을 방송하세요Broadcast yourself'였습니다.(왼쪽) SNS 설전으로 불 붙은 일론 머스크와 마크 저커버그의 “맞짱”이 과연 현실로 이뤄질지 이목을 모으고있는데요. 인상적인 건, 대체로 사람들은 이를 대형 플랫폼을 둘러싼 테크부호들 간의 신경전이라기보다는 동네형들의 싸움같은 서사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입니다. / Unsplash, happy punch promo

<300개의 단상300 arguments>은 제목 그대로 작가인 세라 망구소가 자신의 ‘단상’ 300개를 분류 없이 모아 펴낸 책입니다. 소재는 글쓰기부터 시작해 자신의 어린 시절, 과거 실수, 쓸데없는 정보 등 다양합니다. 얼핏 넘겨보다보면 그가 SNS에 올렸던 글들을 적당히 엮어 ‘아포리즘 모음’처럼 내놓은 느낌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그런식으로 페이스북 등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 낸 책들이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겉보기엔 완전히 누군가의 SNS 피드같은데, 명백히 아니”라는 점입니다.

어떻게 아느냐고요? 일단 이 책을 차근히 읽어내려가보다보면 자연히 알게 됩니다. 도저히 ‘이런 글들’을 SNS에 쓸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거든요.

<300개의 단상>은 이 ‘(SNS글인 것 같은데 아닌) 아슬함’ 때문에, 오히려 명백하게 어느 쪽에 서있는 글보다도 그 경계를 면밀히 탐색하게 해줍니다. ‘과연 SNS글은 무엇이고, 아닌 글은 무엇인가?’에 대해서요.

이 얇은 책은 금세 읽을 수 있습니다. '단상' 모음이기 때문에 띄엄띄엄 아무데서부터 펼쳐들고 읽어도 되고, 끝까지 읽지 않아도 됩니다.

한동안 이 책을 들고 다니며 거듭 읽어가면서 느낀 이 책의 ‘SNS글’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저자가 자신이 남에게 보이고 싶은, 꾸며낸 자아만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세라 망구소는 <300개의 단상>에서 누군가를 의식해서 잘보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을 ‘편집’하지 않습니다. 외려 좀 불필요하다 싶을 정도로 묘한 지점을 계속 건드리고 선을 넘나듭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했던 SNS 글의 특징 중 3번 특징을 다시 곰곰 되짚어보게 하는데요. “과연 SNS의 ‘진솔함’이 진짜 진솔함일까?”라는 의문이 들죠.

<fig.3> 세라 망구소가 쓴 <300개의 단상> 책 표지(왼쪽) 독일 쾰른에 거주하는 아티스트 제럴딘 웨스트가 진행한 '인스타그램 대 리얼리티(Instagram vs Reality)' 프로젝트 중 한 사진. 보통 인스타엔 가장 빛나고 깔끔한 '인증'만 올라오지만, 실제 경험은 고단하고 복잡한 경우가 많습니다. / 필로우, '@geraldinewest_'

SNS는 ‘자기 전시의 장’입니다.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의 큐레이션 꽃다발같은 장소죠.

예를 들면 둘리가 오늘 하루동안 집 청소를 하고, 팬더 동영상을 두시간 보고, 만화책을 좀 보는 그럭저럭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에 간만에 비싼 저녁을 먹고 콘서트에 가게 되었다고 쳐봅니다. 그러면 둘리는 이중 비싼 저녁의 사진과 콘서트 사진만 올릴 것입니다.2) 또치는 집 청소를 하다가 SNS를 보고 부러워할 것이고요.

‘생각’에 대한 것도 어쩌면 비슷합니다. 내가 아무리 ‘진솔한’ 투로 쓰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쓰게 됩니다. 이는 SNS의 즉시 ‘알림’이라든지 좋아요 개수 등과도 연관이 있는데, 아무리 덤덤한 사람이라도 두근대며 빨간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아무래도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편집해 더 많은 즉각적인 반응을 받을만한 갸륵하고 훌륭해보이는 글을 위주로 쓰게 되는 것이죠. “편집된 진솔함”이라고 할만합니다.

*카메라 렌즈가 나를 향할 때, 나를 보는 눈이 소름끼칠 만큼 많을 때, 나는 즉시 나 자신이라는 배역을 연기하려고 애쓰기 시작한다.

*흥미로운 사람들은 남들에게 흥미로운 사람으로 보이는 일에 흥미가 없다.

-세라 망구소, <300개의 단상>(이하 동일)

저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는, 꾸물꾸물 일기를 쓰다가 SNS에 무언가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 ‘철커덕’하면서 모드가 바뀌는 기분이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마치 오이에 붙은 개미 생각을 하다가 갑자기 지구의 무게를 떠올리는 것처럼요.

누군가에게 ‘흥미로운 사람’ ‘진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이었을까요?

망구소는 이 책에서 주변 지인에게, 심지어 모르는 사람에게 말하기도 조금 꺼려지는 말들을 늘어놓습니다. 유부남이 된 한 작가와의 연애라든지, 젊은이에 대한 치졸한 질투심, 찌질한 마음, ‘누구도 친구 삼고 싶어하지 않을만한’ 우울한 이야기들도요.

*중학생 때 나는 한 소년을 사랑했지만, 그 아이에게 말을 거는 것이 두려워 검은색 종이를 잘라 만든 하트를 1년 동안 매주 하나씩 우편으로 보냈다. 나는 그 아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두려웠다...

*학생이 내 기대를 뛰어넘으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배신당한 느낌이 든다.

저자는 촉망받는 젊은 작가이자 교수입니다. 그는 얼마든 비싼 호텔 라운지에서 아이와 함께 즐겁게 노는 사진 혹은 대외적인 자랑거리만 인스타에 올릴 수 있고, 그것 역시 ‘현실’입니다.

하지만 그는 ‘굳이’ 이런 자신의 어둑하고 논쟁적인arguments 부분을 드러내 꺼내놓기로 했습니다. 아마도, 이 애매함, 찌질함 역시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굳이 말하고 싶어하진 않기 때문에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요.

*당신의 가장 수치스러운 부분을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다른 내용으로 시작하면 그게 뭐든 그저 지루한 배경 설명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한발짝 한발짝 읽어내려가며 계속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나라면 과연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이 글을 SNS에 올릴 수 있을까? 어디까진 괜찮을까? 이 정도는 용납 가능한가?...

저는 나아가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책에 관련 내용이 나오진 않지만, 개인의 컴플렉스나 찌질함을 이야기하는 것만큼이나 SNS에선 정치적이나 사회적으로 민감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중얼거림’이 순식간에 퍼져나가 기사화되고 ‘캔슬’당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시대, 누구든 글을 올릴 때 진솔하고 선을 넘는 이야기를 하긴 어려울 것입니다.

SNS에 ‘올릴수 있냐/없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이 책에는 딱히 올리기 ‘애매’한 꼬다리같은 글들도 아주 많습니다. 어설프거나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해찰처럼 별 쓸모도 주장도 표적도 없는 글들의 얘깁니다.

찬찬히 읽으며 머릿속에서 굴려보면 재미는 있지만, 당장 SNS에 올린다고 해서 누군가의 즉각적인 반응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딱히 반응이 궁금하지도 않습니다. 남에게 잘보이겠다는 용도로서도 애매하죠.

단지 내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와서 쓰는 종류의 ‘중얼거림’들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괴상한 버릇을 볼 때마다 그것을 병리화할 게 아니라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사람은 자신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네덜란드의 제방(dijk)은 감시자, 잠든 사람, 몽상가라는 세 단계의 명칭으로 나뉘어 배치된다. 제방이 바다에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 붙은 이름들이다.

실은 내가 원하는 모습, 내 삶의 하이라이트, 멋진 글들만을 공유한다고 해서 그 자체를 나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올리버 하임슨Oliver Haimson 교수는 ‘온라인 진정성 역설’이란 개념을 제시했는데요. 사람들이 진정성을 추구함에도 불구하고, 본능적으로 자신의 삶의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을 뽐내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단 거죠.(링크)

그럼에도 <300개의 단상>을 지팡이 삼아 제가 SNS글의 ‘진솔함’의 정체에 대해 궁리해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계가 전부가 아닌데, 마치 이 세계가 전부인 것처럼 여겨진다”

SNS에는 편집된 가장 기쁜 순간, 누구에게 내보여도 문제 없을만한 훌륭한 이야기들, 절망 없이 말끔한 일상들(<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이 모여 하나의 이 세상에 없는 ‘유토피아’를 만듭니다. 모두가 만들어낸 유토피아를 ‘현실’처럼 바라보고 모두가 박탈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행복은 모두가 볼 수 있게 전시되지만, 절망은 각자의 문제일 뿐입니다.

더구나 SNS를 통해 스스로 드러낼 여력이 없는 이들(혹은 관심을 받을 수 없는 이들)의 세상이 훨씬 넓다는 점도 간과되곤 하죠.

<300개의 단상>에서 망구소는 끊임없이 ‘이 글을 쓰는 자신’조차 반성합니다. 이 때문에 분류와 경계 없는 ‘단상’들 중 상당수를 흐르는 커다란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보고, 어떻게 쓰고, 생각하는가...

*교수 회의에서 200만부나 팔린 책을 쓴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다. 성공이 내게서 너무나 가까운 곳에,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하철에서 패혈증에 걸려 죽어가는 사람 가까이에 앉게 되었을 때, 그가 걸린 병에 내가 걸릴 거라는 생각은 절대로 들지 않았다.

이 대목을 읽으며 우리가 SNS를 할 때 갖기 쉬운 ‘기본 자세’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SNS에는 전자는 인플루언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책, 인터뷰 등을 통해 끊임없이 재소비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것입니다. 한편 후자는 SNS의 세계에선 아예 존재조차 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런 기울어짐을 인지하고, “SNS의 세상”에선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SNS의 세상에만 집중할 땐 보이지 않았던, 내 안의 보이지 않는 ‘꼬다리들’도요.

✏️

“내가 페이스북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는 내 오래된 갈망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의 갈망들도.” -세라 망구소, <300개의 단상>

2)이런 트렌드에 대한 반발으로, 지난해 말 비리얼(Bereal), 슬레이(Slay) 등의 SNS 플랫폼이 출시되어 한때 이목을 끌었습니다. 화려한 순간만 포착하는 인스타와 달리 미지 않은 일상 그대로를 찍어 올리는 거죠.(링크) 하지만 이런 플랫폼들 역시 결국은 수익성을 위해선 일정 이상의 이용자 수, 화제성을 확보해야 하고 어느정도의 '짠'이 있어야한다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3.들을 ‘필요’ 없는 세상 : <디베이터>】

세라 망구소의 ‘단상’들은 우리에게 SNS가 드러내지 못하는 현실, 그 바깥의 생각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누군가가 설령 이야기한다고 해도 과연 SNS에서 우리는 그것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그리고 그건 단지 산만한 우리의 탓일까요?

실은 ‘들을 준비’는 커녕, 우리는 대체로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SNS의 세계에선 나와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 취향과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과 마주할 필요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SNS에선 나와 비슷한 생각의 ‘일침’에 ‘공감’을 하는 형태의 읽기가 주를 이루곤 합니다. 편안한 지루함이죠.

<fig.4> 서보현(왼쪽) <디베이터>의 영문판 표지. 영문판 부제는 "토론이 어떻게 우리에게 듣는 것, 그리고 경청되는 것을 가르치는가"입니다. 즉, '토론'에 대한 도서임에도 명백히 '말하기'보다도 '듣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서보현의 <디베이터Good Arguments>는 우리가 SNS의 생태계에서 명백히 잃어버린 어떤 종류의 ‘소통’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은 토론대회 세계 챔피언인 저자가 ‘토론의 기술’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요. 전반적으로 어떻게 저자가 토론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어떻게 토론을 연습해 세계적인 디베이터들과 논쟁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에선 실제 ‘토론대회’의 토론 과정이 꽤 생생하게 들어있기도 한데요.

이런 장면들을 읽으면서 제가 떠올린 큰 느낌표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1)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말할 수 있다’(!?)
2)토론은 실상 ‘말하기 반, 듣기 반’이다 : 제대로 들어야 한다

우선 1번은 굉장히 새삼스럽긴한데, 우리는 SNS 시대에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을 마치 다른 언어를 쓰는 외계인 취급하곤 합니다. 같은 기사를 공유해도 어떤 커뮤니티, SNS냐에 따라 반응이 천차만별로 갈리기도 하죠.

그런데 ‘토론(논쟁)’이란 기본적으로 나와 생각이 정반대인 사람과의 대화입니다. 특히 토론 대회에선 마치 체스의 흑/백처럼 아예 찬/반을 정해 각자 그 입장에서 논의를 시작하죠. 이 때문에 이 책에선 어떤 한가지 주제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이 어떻게 맞닥뜨리고 어떻게 논파되고,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 갖가지 전략들이 등장하는데요.

저는 그 일련의 디테일한 내용보다도, ‘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과 이야기를 저렇게 깊게 할 수 있었구나’라는 사실 자체를 부러워하며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상대를 ‘부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결론을 내는 것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고요.

“이 토론에서 너희들이 해야 할일은 상대팀이 형편없는 주장을 한다거나 나쁜 녀석들이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야. 언론의 자유에 대해 포괄적인 제약을 허용하도록 청중을 설득하는 거지[...]노를 아무리 많이한들 예스가 되진 않아[...]일단 상대의 주장을 무너뜨리고 나면, 그 다음엔 더 나은 대답을 제시해야 해.“

-서보현, <디베이터>(이하 동일)

이어 우리는 통상 토론의 기술이라고 하면 ‘말하기’만 주목하는데요. 실은 상대의 말을 제대로 듣는 것이 말하기만큼이나 중요합니다.

일단 상대의 말을 곡해 없이 제대로 들어야 어느 부분을 지적하고, 또 거기서 더 나은 생각으로 뻗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이 책의 영문판 부제가 ‘말하는 법’이 아닌 ‘듣는 법’을 강조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책엔 주목할만한 또 한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저자는 어떤 토론이 좋은 토론인가에 대한 이야기 외에도,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실질적인 조건을 계속 상기시키는데요. “다른 사람과 의미 있는 소통을 하기 위해선, 남의 말을 제대로 듣기 위해선 이를 위한 최소한의 규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아무리 “스쿨존에서 아이와 차가 안전하게 공존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해도, 아무런 법규가 없으면 유명무실할 수 있습니다. 이때 속도 제한 규칙, 잘 작동하는 신호등, 패널티 등이 이를 가능케 해줍니다. ‘토론’에 있어서도 마찬가집니다.

<fig.5> 양극화된 의견 차를 좁히기 위한 교육, 이벤트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는 미국의 단체 Braver Angels. 이곳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더 잘 듣기 위한' 질문이 중시된다고 합니다.(왼쪽·링크) 적절한 신호등, 도로 규정들이 없다면 과연 우리는 효과적으로 거리를 이용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원래 8살에 영어를 못하는 채로 호주에 이민와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토론을 하게 됐지?’ 싶은데, 오히려 그에게 있어 ‘토론 대회’는 맘껏 말할 수 있는 해방의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선 말이 어눌하다고 해서, 동양인이라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말을 가로채일 위험 없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보장된 공간이었죠. 누구든 다른 사람이 말할 땐 잠자코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게 ‘규칙’이니까요.

“2005년 처음 토론을 시작했을 때 이 활동에서 가장 좋았던 게 바로 끼어들기를 당하지 않는다는 약속이었다[…](토론의) 기본 바탕은 독백이 아니라 대화다[…]토론은 서로에게 열린 마음으로 계속 귀를 기울이게 한다[…]상대를 믿지 않고서는 어떤 대화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토론이 계속되려면, 다른 이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생각해봅니다.

‘별다른 규칙 없이 자유로운’ SNS 공간에서 과연 사람들은 남의 말을 제대로 듣고, 또 하고 있을까요? 실은 100명쯤 모여놓고 정작 누구나 귀를 막고 자기 말만 외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요? 그리고 과연 그 풍경을 ‘의미있는 소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듣는 것’은 단순히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들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제대로 들을 때 우리는 대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진화시킬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해보자, 상대가 새로운 논점을 제시할 때마다 무조건 ‘헛소리’라고 생각해. 그런 다음 어떻게든 그 이유를 생각해내.[...]너흰 상대방의 논증에 제대로 대응해줘야 해. 그래야 상대방도 개선할 기회가 생기지”[…]반론은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토론 상대에 대한 신뢰의 표시였다[…]헛소리라고 말하는 건 반대에서도 긍정적인 무언가를 얻어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믿는 행위였다.

처음엔 위의 대목을 보고 깜짝놀랐는데요. 일단 ‘헛소리’라고 하고 보라니, 아무리 게임이라곤 하지만 너무 적대적인 것 아닌가? 싶어서요.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상대의 말을 “음, 일리가 있군...”이라고 들을 때보다 일단 “헛소리”라고 생각하고서 그 반박거리를 골똘히 생각할 때 훨씬 더 많은 메모를 하고 적극적으로 듣게 됐다는 점이었습니다. 같은 얘길 들을 때도요.

단지 상대를 찍어누르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춤을 추고 있고 - 그 결과 우리가 서로에게 불완전한 점을 지적하고 보완하자는 협력의 태도가 있다면 이런 ‘반박’은 상대에 대한 최상의 존경이자 최고의 대화가 되는 것이죠.

물론 이 책의 정교한 ‘논리 기법’을 그대로 현실에 가져올 순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논리에 의해서만 자신의 주장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거짓인 걸 알면서도 감정에 따라 선택하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이 책을 붙잡고 읽는 내내 계속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토론 대회에 ‘세세하고 까다로운 규칙들’이 없었다면, 의미있는 토론이 가능했을까? 주먹 대신 말이 오갈 수 있었던 이유는 적합한 규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서 SNS의 이야기를 떠올려봅니다. 플랫폼이야말로 이런 대화를 가능하게 할 ‘규칙’을 만들 책임이 있는 주체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플랫폼은 ‘의미있는 소통’이나 ‘의미있는 읽기’보다도 수익성이 목표입니다. 이 때문에 단지 폭죽이 터지는 모습, 싸움에 싸움이 이어지는 모습을 멍하니 감상하게 되곤 합니다. 혹은 서로 비슷한 사람끼리만 모이게 해서, 그 ‘골치아픈 싸움’을 아예 우리 삶에서 치워버리거나요.

【4.맺음말】

오늘은 스레드를 구실 삼아 SNS에서의 쓰기, 읽기(듣기) 경험에 대해 해찰을 해보았습니다.

오늘 레터를 쓰면서 새삼 든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SNS’라고 하면, 마치 우리 일상과 동떨어진 무언가를 상상하곤 하는데 실은 그냥 우리가 평소에 수시로 영향을 받고 읽고, 쓰는 삶의 일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SNS에서의 소통’에 대해 투덜거린다는 것은, 기실 어떤 플랫폼이나 기술,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이나 그냥 ‘소통’ ‘읽기’ 그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잡지건 신문이건 SNS건, 어디서든 좋은 ‘읽기’와 소통을 하고 싶기 때문에 이런 해찰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 레터에서 다룬 책 두 권(<300개의 단상300 Arguments> <디베이터Good Arguments>)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권 모두 원 제목에 ‘논쟁Arguments’이란 단어가 들어간다는 점입니다.3)

의도했던 바가 아닌지라 - 처음엔 그저 사소한 우연이라 여겼지만, 곰곰 곱씹다보니 이는 어쩌면 ‘소통’에 대해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주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어떤 글을 쓰든, 읽든 간에 어느 정도 차이와 갈등은 당연할 것입니다. 모두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이 틈새에서 ‘논쟁’들이 발생합니다. 우리는 이를 다루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생각과 조우하고, 또 부딪히고,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을 통해 더 풍요로운 소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열렬한 공감 혹은 열렬한 비난으로 양극화된 SNS 생태계에선, 이런 ‘논쟁’들이 발생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온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땅히 이야기되어야 할 것들, 마땅히 싸워야할 것들이 오히려 삭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문득 오늘날 과연 ‘소통’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소통이 얼마나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과 각오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

“누군가 의미를 돌출하고 싶다면 우리는 친절한 대화를 이끌어 갈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미가 출현되는 순간은 바로 정치가 작동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최근 독백과 침묵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현재 경험하는 대화가 대부분 대화이지만 대화가 아니라는 생각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너무나 많은 소란이 대화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요즘은 늘 대화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기도 합니다.”
-김장언, <불가능한 대화>

3)세라 망구소의 책 원제가 300 Arguments였다는 점은 정말 의외였고, 실제 해외 서평 가운데서는 이 제목에 대한 언급을 하고 있는 것들도 있습니다. 그냥 '격언 모음'같은 것인데 왜 굳이 제목이 '논쟁'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죠. 관련해서 저자가 직접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찾지 못해서, 대신 레슬리 제이미슨이 저자의 다른 책 <망각일기>에 대해 쓴 서평 일부를 인용합니다.

"이 책에 포함된 고백은 타인의 관심을 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비판을 위한 것이다[...]이러한 방식의 글쓰기는 자기 고백적 글을 쓰는 작가들에게 어떤 대안을 제시한다. 쓰기의 목적은 누군가의 관심이나 동정을 구하는 데 있지 않다. 이 책에 쓰인 삶은 사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주장에 대한 근거다. 그것에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관음증에서 비롯된 교감이 아니라 공동 탐구다. 작가와 독자는 지저분한 삶 속에서 필연적으로 직면하게 되는 동일한 질문을 함께 탐구하게 된다."

꼭 '토론Debate'이 아니라 혼자 쓰는 글의 경우에도 혼자만 보고 태울 작정이 아니라면, 그 글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가닿아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의 논쟁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실제로 저도 300개의 단상에 실린 모든 단상에 "아 이거 완전 내 얘기잖아!"라며 '격한 공감'을 외치면서 읽은 건 아니기도 하고요. 통상 '격언'이라고 하면 일방적인 가르침의 느낌인데요. 비슷한 성격의 글에 '논쟁'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을 통해, 저자는 어쩌면 자신이 마련해놓은 싸움판에 독자를 초대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에세이라고 해서 꼭 '공감 에세이'라거나 '힐링 에세이'일 필욘 없죠.(이 책의 장르가 에세이인지 무엇인지는 의문이긴 하지만요)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세라 망구소, 서제인 옮김, 『300개의 단상』, 필로우, 2022.

-예전에 별 사전 정보 없이 그냥 얇고 작아서 집어들게 된 책이었는데요.(출퇴근 때 버스에서 읽을 책이 필요했습니다) 여러모로 신기하고 흥미로운 독서 경험이었습니다. 처음 책을 집어들었을 땐 '아포리즘 모음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 읽다보니 'SNS 글 모음인가?' 라는 생각이 들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은 나처럼 생각하는 독자들마저 감안하고 쓰여진 하나의 실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작가의 책 <망각일기>(링크)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서보현, 정혜윤 옮김, 『디베이터』, 문학동네, 2023.

-한국어판 표지 디자인이라든지 마케팅이 실용서처럼 잘 됐기 때문에(이 책의 한국어판 부제는 '디베이팅 세계 챔피언 서보현의 하버드 토론 수업'입니다) 이쪽에 관심이 별로 없으신 독자분들은 표지만 보고 선뜻 집어들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러기엔 이 책이 담고 있는 독특한 현장성, 메시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간 주변에 권해왔습니다. 단지 토론의 '기술'에 대한 방법론을 넘어, 좋은 토론이란 무엇인가. 토론장이라는 '링'을 벗어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등의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습니다.

한스 게오로크 묄러 외, 김한슬기 옮김, 『프로필 사회』, 생각이음, 2022.

-SNS에서의 자기 표현을 '프로필성'이라는 단어를 통해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의 메시지를 요약하자면, "흔히들 셀카찍고 남에게 보이고 싶은 모습을 잔뜩 가져다가 꾸미는 '프로필성'을 부박하다고 까대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특징'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저자들은 '프로필성'을 '진정성-없음(부정적)'이 아니라 '비진정성(중립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책의 주장은 제게 있어 아직 조금 이상하긴 합니다만, 앞으로도 그 이상함을 두고 고민해보려고 합니다.

앤드류 포터, 노시내 옮김,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마티, 2016.

-예전에 NFT 회차에서 짧게 다루었던 책입니다. 당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를 "('진정성'이 나쁜 게 아니라,) '진정성팔이'들이 나쁘다"라고 정리했었는데요. 오늘 SNS의 자기과시성과 관련해 이런저런 생각할만한 거리를 주는 책입니다. <프로필 사회>와는 어찌보면 상반되는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 책의 메시지는 지금와서 읽으면 다소 무난한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예전에 처음 읽을 땐 굉장히 깜짝 놀랐던 기억입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SNS시대에도, 이 글은 사라질 수 없다

독서시간: 약 11분 / 글자수: 약 6400자

🖍글 속 한 문장

“지리멸렬한 하루를 살아가는 인간은 보통 ‘하루가 정말 따분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상엔 그 똑같은 하루를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다. ‘내일이 새로울 수 없으리라는 확실한 예감에 사로잡히는 중년의 가을은 난감하다.’(김훈) 아무리 책이 사라진다고 해도 이런 문장을 갈망하는 독자는 영원할 것이다. 문자가 아니면 전달이 불가능한 영역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30년 전, 김훈에게 “소설 한번 써보시라”고 권유했고 신경숙, 천명관 등의 수많은 스타작가의 작품을 낸 강태형 문학동네 창립자의 말입니다. 그는 독특하게 한때 프로복서를 꿈꾸기도 했다는데요. 책, 문학 등에 대한 다양한 생각할거리가 담겨있는 좋은 인터뷰입니다.

전자 텍스트 뿐 아니라 영상을 통해서도 수많은 말이 오가는 시대에도, 어떤 종류의 '말'은 여전히 각별하게 쓰여질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위에 쓰인 두 문장을 단지 '글자 수'로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인생샷’ 뒤의 여자들

독서시간: 약 7분 / 글자수: 약 3600자

🖍글 속 한 문장

“우리는 인생샷은 알지만 인생샷을 찍는 여성들은 모른다[...]차별받는 사람은 어떻게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기존의 세계를 미워하며 닮아가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이행할 수 있을까?”

👤김스피의 블라블라

신간 <인생샷 뒤의 여자들>(김지효·링크)에 대한 서평입니다.

이 책은 그가 20여명의 인스타그램 여성 이용자들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요. '인생샷 문화' 속에서 '셀기꾼' 등으로만 호명되어온 여성들의 복잡한 삶, 감정의 결을 살피고 있습니다.

서평의 내용 가운데 인스타그램 플랫폼에선 '페미니즘'마저도 결국 "‘페미니스트인 나’의 이미지를 관리하는 문제로 귀결됐다"고 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이는 '나'와 '좋아요'를 기반으로 하는 SNS 생태계의 한계이기도 할 것입니다.

어떤 말에는 ‘말 할 결심’이 필요하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300자

🖍글 속 한 문장

“저도 당시에 그런 사람이 되게 필요했으니까요.” A에게 ‘임신중지 경험을 말하게 된 계기’를 묻자 말미에 그가 답한 이 대목이 나의 마음을 붙들었다[...]누군가 필요로 ‘할 테니’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군가 필요로 ‘하기에’ 하는 말은 중요하다. ‘내가 하는 말은 너에게 필요한 이야기일 것’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나 중심 발화에서 나아가 ‘너에게 필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말한다’는 너 중심 발화는 묵직한 결심을 동반하는 행위이다. 자신의 내밀한 부분을 내보이는 데에서 오는 두려움보다 당신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앞세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쉽게 말해지고, 쉽게 쓰여지는 시대에도 여전히 어떤 글들은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나'가 아닌 '너'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까스로 용기를 내어 말 할 결심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레터를 쓰는 내내 '진솔함'이란 무엇일까 대해 생각했는데, 결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나'를 지우는 것이 그 조건 중 하나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62, 47, 16, 9, 그리고 수많은 트윗들

영문(NYT)

🖍글 속 한 문장

"결혼 초창기 나의 남편은 교수였고 우린 항상 책에 대해 얘기했죠. 우리는 대화하고 또 대화했지만, 그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고 가르쳤던 학생들도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그 모든 행복 중에 내게 남은 것은 그때 내가 쓴 글들 뿐입니다[...]이것은 심오하고도 일종의 충격적인 사실입니다. 견고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실제론 덧없고, 또 덧없습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소설가, 시인 조이스 캐롤 오츠(Joyce Carol Oates)의 최근 인터뷰입니다.

제목의 숫자는 올해로 85세인 제인 캐롤 오츠가 현재까지 써온 책의 권수입니다.(62권의 소설, 47권의 단편집, 16권의 논픽션, 9권의 시집 등) 최근 신간을 낸 그는 여전히 차기작을 쓸 마음에 두근거린다고 하는데요.

신작 맞이 책 홍보 인터뷰같지만, 실은 85세의 정력적인 작가가 바라보는 삶과 글에 대한 관점, 그리고 SNS와 책(문학)의 소통의 차이, SNS의 캔슬컬처와 편견 등에 대해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하는글입니다.(그럼에도 그는 열성적인 트위터 유저(링크)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아마도 이 긴 인터뷰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질문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늙어가고, 죽고 나면 결국 무엇이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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