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만 잘하면 되는 걸까? : 관찰력의 힘

2023. 5. 9.

질문만 잘하면 되는 걸까? : 관찰력의 힘

Powers of observation

저자 김스피

(Authors) Kim, Supi

출처 인스피아 저널, (86), 2023.5.10,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회차 https://page.stibee.com/archives/107426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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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 안테나, 해찰, 질문, 가설, 영감, 독서

1.머리말
2.안테나 : 어떻게 나만의 ‘안테나’를 세울 것인가?
3.해찰 :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4.자석 : 의도적인 확증 편향
5.맺음말

【1.머리말】

안녕하세요. 연구자님. 느릿하게 해찰하며 걷는 것을 좋아하는 김스피입니다.👤

“미래에는 질문하는 능력이 가장 중요해질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강조합니다. 실제로 좋은 질문을 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챗GPT 붐 이후 이 ‘질문하는 능력’에 대해 한층 더 강조하는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링크)

다만 그간 이런 갑작스런 ‘질문 붐’을 바라보며 저는 곰곰 생각해보았습니다.

단순히 질문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반쪽에 불과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평소에 질문과 관련한 인풋을 충분히 찾고 받아들이기 위한 관찰력이나 욕망, 집요함 또한 굉장히 중요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닥 강조가 되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질문만 떠올리면 뭐든지 답해주는 기계가 탄생했기 때문일까요?

<fig.1> 지난달 19일 세종시에서 열린 교육,인재 정책 세미나에서 이주호 부총리가 교육개혁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이날 이광형 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은 앞으로 질문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전국 초·중·고교에 질문왕 제도를 만들 것"을 제안하였습니다.(왼쪽) 우리는 사실 질문을 마음 속에 아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째서 그것에 대해 파고들기는 너무나 어려운 것일까요? /연합뉴스, 뉴닉 물물교환 페이지(링크) 갈무리

사실 누구나 평소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 수많은 어렴풋한 질문들을 품고 살아갑니다. 질문이 대부분 불발되기 때문에 눈치를 못챌 뿐이죠.

예를 들면 - 어떤 유튜브나 기사 제목을 볼 때, 기본적으로 이미 질문이 어느정도 자기 안에 있기 때문에 관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만약 제목을 보고 ’궁금‘하지 않다면 클릭을 하지 않겠죠. 예를 들면 이런 질문들은 누구나 한번쯤 떠올려봤을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이야기에 푹 빠져들까?‘ ‘어떻게 지루하지 않게 기분전환을 하며 살 수 있을까?’ ‘AI는 우리의 반복 노동을 모두 다 대체해버리고 말까?’...

그런 이야기들이 궁금하니까, 즉 내 안에도 그 질문이 있으니까 관련된 글을 ‘읽어보자!’라는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1)

대부분의 경우 호기심이 생겨 글을 보아도 내가 이미 다 아는 내용이었거나, 그닥 흥미롭지 않기 때문에 시무룩해지고 끝나는 경우가 많을 뿐입니다.

그러면 물음표가 생깁니다. 그런데 왜 이런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질문들은 불발되는 걸까요?

일단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꼭 ‘답’이 아니더라도)를 얻는 것은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고요. 같은 질문을 품더라도, 거기서 내 나름의 영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나름의 훈련과 평소의 노력(헌신)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인스피아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 기상천외한 질문을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다는 점이라기보다는 질문에 대해 어떻게 평소에 관찰하고 발효시키는지에 대해서일 것 같습니다.2)

이는 일상적인 관찰력과 관련이 있는데요. 많은 작가들은 관찰력이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훈련을 통해 얼마든 갈고 닦을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질문을 떠올리고 궁금해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내 나름의 해답을 궁리해볼 수 있을까요? 질문으로부터 영감을 얻어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오늘 레터에서는 사도시마 요헤이의 <관찰력 기르는 법> 등을 지팡이 삼아, 관찰력을 기르고 - 질문으로부터 자신만의 독특한 영감을 끌어내는 법에 대해 해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핵심 키워드로는 ‘안테나’와 ‘해찰’, ‘자석’이라는 단어를 꼽아보았고요. 이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보겠습니다.

책을 지팡이 삼되, 평소에 비해 조금 더 인스피아를 쓰는 과정에 대한 제 나름의 생각을 담아보려고 합니다.

1)최근 MBC 일사에프팀이 쓴 책 <MBC 14층 사람들은 이렇게 기획합니다>(링크)를 넘겨보다가 인상 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큰 반응이 오는 영상들은 보통 ‘아주 새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이미 익숙한 내용에 대해 한끗 더 들어간 경우’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어쩌면 이는 이미 누구나 궁금해할만큼 ‘큰 질문’이지만, 항상 표면적으로만 안이하게 다루어져왔던 주제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만큼 '한끗' 더 들어가서 질문에 대해 어느정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겠죠. 즉, 질문은 누구나 품을 수 있지만 그 질문에 대한 만족할만한 답을 얻고 영감을 얻는 것은 역시 만만찮은 일입니다.

2)또한 물론 거기에 달라붙어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2.안테나: 어떻게 나만의 ‘안테나’를 세울 것인가?】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선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최대한 다양한 자극, 지식들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 히사이시 조’

예전에 처음 인스피아를 기획하던 시기, 잡지책을 읽다가 왠지 ‘안테나를 세운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어서 옮겨적어 두었던 문장입니다. 얼핏 ‘하나마나한 말씀’ 같지만, 그간 인스피아를 쓰면서 ‘항상’과 ‘안테나’의 중요성을 실감해왔습니다.

항상 안테나를 세워야 하는 이유는, 제 생각엔 다음과 같습니다.

마음먹은 순간에만 관찰을 하면 인풋(Input)이 보잘것없어지고, 의식적으로 안테나를 세우지 않으면 인풋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배가본드> <우주형제> 등을 담당한 일본의 유명 만화 편집자 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관찰력’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저자에 따르면 관찰력이란 ‘객관적으로 주의깊게 보는 기술’인데요. 저는 이 관찰력이 히사이시 조가 말하는 ‘안테나를 세운다’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봤습니다.

관찰력이 높은 사람은 같은 것을 보아도 이로부터 훨씬 더 풍부한 이야깃거리와 맥락을 발견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소위 ‘인풋’의 질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창작자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을 하기에 ”좋은 창작자의 조건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데, 그 때마다 ”관찰력입니다“라고 답한다. 인생은 길다. 인풋의 질이 좋으면 최종적으로 아웃풋의 질도 좋아진다. 그때 인풋의 질을 높이는 것이 바로 ‘관찰력’이다.”
-사도시마 요헤이, <관찰력 기르는 법>(이하 동일)

약간 알쏭달쏭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저는 이 관찰력이란 같은 책을 읽거나 같은 장면을 보아도, 자신만의 전혀 다른 관점에서 풍부한 맥락과 영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반드시 뛰어난 영감을 얻어내고야 말겠어!’라며 뚫어지게 째려본다고 해서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선 맥락을 파악하고, 그 위에 나름의 관찰력(안테나)을 기르는 법을 수련해야 합니다.

<fig.2> 사도시마 요헤이의 사진. 고단샤에서 <배가본드><드래곤 자쿠라> 등을 담당하다가 2012년 회사를 나와 현재까지 코르크라는 작가 에이전트 회사를 운영하며 작가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왼쪽) 관찰 사이클을 설명한 도표. 좌하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질문-가설(여기를 기점으로 한다)-관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주식회사 코르크 공식 홈페이지(링크), 学芸出版社

그렇다면 어떻게 관찰력을 키울 수 있을까요?

저자는 책에서 ‘관찰 사이클’이라는 개념을 소개합니다. 관찰 사이클이란 ‘가설을 세우고 질문을 던지고 이를 바탕으로 관찰하는 과정’인데요.3)

예를 들면 ‘많은 기능이 포함된 기계는 효율적일까?’라는 ‘질문’(링크)이 있다면, ‘그닥 효율적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에 대한 관찰을 이모저모 궁리해보는 것입니다.

가설은 꼭 완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설’이라고 이름 붙여놓은 이상 어떻게 하든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쩌면’이라는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어떤 글에서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그 뒤에는 이어서 가장 무책임하면서도 허공을 딛는 위태롭고 독창적이고 처음보는 알쏭달쏭하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짠하고 튀어오르곤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은 ‘가설의 언어’입니다. 꼭 구체적인 데이터, 근거는 없어도 ‘나의 직감’에 의존해 갈 수 있는 곳까지 일단 생각을 한껏 밀고 가보는 것입니다.

가설은 관찰을 시작할 때의 최강의 도구다[…]관측을 하면 데이터라는 ‘만질 수 있는 것’이 손에 들어온다. 그러면 무언가를 얻은 기분이 들어 안심하고 만다. 그러나 인터넷을 비롯한 도구가 전혀 없어도 가설에만 의지해 세상을 바라본 사람이 오히려 훨씬 멀리까지 관찰했다. 예를 들어 2500여년 전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불 공기 물 흙’으로 세상이 구성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세상을 관찰하며 깊게 사고했다. 그리고 관찰을 계속하는 가운데 4원소라는 가설 자체도 진보했다.

질문과 가설도 단순히 한줄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어쩌면’이라는 말들이 고리로 연결되며 쭉쭉 늘어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처럼요.

‘우리의 집중력을 분산하는 올인원 도구는 생각처럼 효율적이지 않을지도 몰라 - 왜냐면 사람들은 한 일을 할 때 하나에만 ‘집중(몰입)’하고 싶어하니까 - 그런데 왜 도구는 한 번에 하나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지 않았을까? - 만약 도구가 효율적이려면 인간들이 ‘진정으로’ 멀티태스킹에 만족하고 거기서 효율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점차 피곤함을 느끼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도구의 본질을 한번쯤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제 경우 이런 질문과 가설들은 책을 읽으면서 훨씬 구체화되고 힘을 얻곤 하는데요. 때로 책은 저를 ‘이 바보야!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군’이라고 머리를 한대 쥐어박아주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더 큰 질문을 떠안겨주기도 합니다.

이런 ‘관찰 사이클’이 일상적으로 반복된다면, 안테나를 통해 받아들일 수 있는 인풋의 질은 크게 올라가게 됩니다. 반대로 이런 사이클 없이 질문과 인풋이 따로 작동하는 사람들은 인풋의 질을 크게 높이기 어렵고요. 관찰력의 ‘마태효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효과(Matthew Effect·링크)= 성경 마태복음에 나오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라는 구절을 활용하여,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이 만든 용어. 능력 등에 있어 점점 격차가 벌어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fig.3> 그리스 신화 속 눈이 먼 오리온이 어깨에 케달리온을 들쳐메고 있는 모습. ‘거인의 어깨에서 바라본다는 말은 뉴턴의 1675년 편지로부터 유명해졌는데요. 실은 그 이전부터 과거 현인들의 지적 성취를 지팡이삼아 살펴본다는 의미에서 '거인의 어깨 위에서 본다'는 메타포가 활용되었다고 하네요.(왼쪽) 책은 현실을 더 깊이,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해주는 돋보기의 역할을 합니다. 잘 쓰여진 책은 누군가가 어떤 질문에 매달려 혼신의 궁리를 한 흔적이기 때문이죠. /wikipedia, unsplash

이런 질문과 가설은 물론 나의 경험에서 솟아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책’을 통해 뽑아내고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꼽아보았습니다.

1)책은 지팡이다!

2)책은 현실을 더 선명히 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다

우선 ‘책’은 관찰을 위한 지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많은 사람들이 질문과 가설을 밀도있게 실험해본 ‘관찰 사이클’의 과정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이미 2000년 이전에 로마 철학자 세네카는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궁리했습니다. 저는 지금 막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 ‘코흘리개’고요.

하지만 책을 통해 이전에 비슷한 질문을 했던 사람들의 생각의 조각을 찾고 이를 ‘지팡이’ 삼아볼 수 있습니다. 나의 질문을 위해 책을 열심히 읽는다면 이른바 ‘거인의 어깨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이죠.

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요. 독창성도 좋지만, 일단은 어느정도 기존의 틀을 익혀야한다는 것입니다.

‘틀’을 몸에 익히는 행위 자체가 관찰과 궤를 같이 한다. 틀을 따라 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가설 검증의 사이클이 돌고, 대상을 더 잘 알게 된다. 관찰하지 않으면 틀이 몸에 익지 않으며, 틀이 몸에 익으면 관찰의 정밀도도 오른다[…]어느정도 틀을 암기하면 자연스레 틀을 사용하게 되고, 대상을 더 자세히 알게 되면 행위에도 자기 나름의 생각이 담기게 된다. 자기 생각이나 호불호를 배제하고 시작한 ‘따라 하는’ 행위로부터 자연스레 자신의 욕망과 관심이 샘솟는다[…]이렇게 틀을 갱신했을때야말로 ‘독창성’이 나타난다. 반대로 틀을 갖추지 못한 채 자기 멋대로의 방식으로 도달하는 것은 대개 이미 존재하는 틀의 저급한 버전일 때가 많다[...]독창성은 틀이 없는 것이 아니다. 독창성은 틀과 틀을 조합할 때 생겨난다. 서로 상이한 틀과 틀을 어떻게 조합하는지가 혁신을 빚어낸다. 그렇기에 “혁신은 변경에서 생겨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독창성이 있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틀을 갖추고 변경에 가야만 한다.

여기서의 틀은 다양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같은 질문을 고민해왔던 선인(先人)들의 시도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에게 직접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책을 통해서입니다.

또한 책은 현실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게 해주는 렌즈가 되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친구, 동료와 매일같이 수다를 떨더라도, 정작 그의 진짜 마음 속 고민과 갈등은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책은 그런 이야기들을 정면으로 꿰뚫고 들어갑니다.

제임스 우드는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이처럼 현실을 더 잘 주목하게 해주는 렌즈로서의 문학의 기능을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문학과 삶의 차이는 삶이 두루뭉술하게 세부사항으로 가득 차있으면서도 우리를 그 세부사항에 주목하도록 거의 이끌지 않는 반면, 문학은 우리에게 세부사항을 알아차리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점이다[…]과정은 변증법적이다. 문학이 우리를 좀더 삶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삶 자체에서 실습하게 되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를 문학의 세부사항을 좀더 잘 읽는 독자로 만들면, 그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삶을 좀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 이런 과정이 이어지는 것이다.”
-제임스 우드,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위는 ‘문학’에 대한 이야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책(논픽션 전반)’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실 관찰과 독서를 ‘두 발’처럼 나란히 뚜벅뚜벅 활용합니다. 책을 통해 현실을 잘 보는 방법을 배우고, 현실을 통해 또 책을 잘 읽는 방법을 배우는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이죠. 이런 경험을 다각적으로 하다보면 우리는 더 다양한 분야에 대한 ‘렌즈’를 얻고 현실을 더 ‘깊고 복잡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간 저는 인스피아를 쓰기 위해 독서를 하는 과정에서, 이 대목에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는 단지 어렴풋한 질문을 들고서 책을 기웃거렸을 뿐인데, 훨씬 더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짚어낸 책을 보며 오히려 뒤늦게 ‘아! 내 마음이 바로 그거였구나’라며 손뼉을 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심지어 제가 직접 겪은 일들에 대해서도요.

예를 들면 ‘도구의 기능’에 대해 다루었던 지난 회차(링크)에서 저는 책을 읽었기 때문에 ‘내가 도구를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게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쓰는 도구는 썩 좋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외로움 회차(링크)에선 ‘지하철에서 쓸쓸하게 멍때리는 것을 지구 반대편 사람들도 왠지 이상하게 생각하는구나.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나의 각오가 필요하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고요. 이런 생각이 또 현실에서 새로운 시도나 관찰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또 다른 책을 볼 때 자원으로 쌓이는 것입니다.

만약 같은 시간동안 제가 유튜브나 네이버 기사창, 구글, 커뮤니티에서 검색을 한 글들만 ‘지팡이’ 삼아 보았다면 이만한 재미난 ‘인풋(해찰거리)’을 과연 이 만큼의 밀도로 얻을 수 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3)안자이 유키 외, <물음을 디자인하다問いのデザイン: 創造的対話のファシリテーション>(2020)

【3.해찰: 불완전함을 받아들이기】

이상 ‘나만의 안테나를 세우고 - 자유분방하게 질문을 던지고 가설을 세우며 관찰하기’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은 불안해질 수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관찰해보고 싶어도 나의 생각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죠.

이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사도시마 요헤이는 <관찰력을 기르는 법>에서 ‘에포케epoche’라는 단어를 꺼내듭니다. ‘판단의 보류’라는 뜻인데요. 나의 생각이 불완전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편견을 일단 벗어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진 사람에겐 무언가를 알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곧장 다시 알쏭달쏭해지며 다른 질문들이 기차놀이를 하듯 따라붙습니다. 사도시마는 이런 상태에 대해 ‘진절머리 나는군’이라고 생각하긴 커녕 오히려 즐거워합니다.

“내 안에서 무언가를 ‘알겠다’라고 생각한 순간에 에포케, 하고 새가 운다. ‘알겠다니 뭐를?’ ‘어떤 상태야?’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지?’ 연달아 물음이 날아든다[…]에포케란 ‘절대’를 포기하는 것이다[...]내가 관찰력을 단련하는 이유는 알고 싶기 때문이 아니다. 모르는 채 모호한 상태로 있기 위한 관찰력을 바란다.”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채로’ 전하는 작품을 편집하고 싶다.”

-사도시마 요헤이, <관찰력을 기르는 법>

이처럼 그는 오히려 ‘관찰력’을 알기 위한 능력이 아닌,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 머물기 위한 능력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저도 이런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알겠다는 마음이 가득할 땐 모호한 것을 바라볼 수 없게 되고 마니까요.

여기에 붙여 이 책의 옮긴이는 영국 시인 존 키츠의 ‘소극적 수용력Negative Capability’을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알지못하는 상황에서 - 사실과 이성을 애써 추구하지 않고 불확실하거나 신기하거나 의아한 상태를 견딜 수 있는 능력입니다.

<fig.4> ‘소극적 수용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John Keats·1795~1821)(왼쪽) 부담없이 간편한 봇짐을 메고서 더 멀리 떠나볼 수 있습니다. / Getty image, Unsplash

한편 저는 인스피아를 쓰면서 ‘해찰하는 독서’의 핵심으로 ‘3무(3無)의 독서’를 꼽아본 바 있습니다. ‘1.부담없음 2.중심없음 3.대책(결론)없음’인데요.

요는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부담없이 집적거려 보고(부담없음), 꼭 책의 중심 내용에서만 교훈을 얻지 않고 책의 구석구석을 열심히 해찰하며 쳐다보고(중심없음) 내가 꽂힌 것에 집중해보고, 굳이 결론을 내리지 않는 태도(결론없음)입니다.

역시 꽤 하찮아보이는 태도입니다만, 오히려 이처럼 부담없이 ‘해찰’이라는 헐렁한 단어를 들고서 봇짐 가볍게 떠날 때, 주눅들기 쉬운 텍스트의 숲 속에서 나만의 안테나를 달고 기웃댈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결과 질문과 가설도 더 풍부해지고, 얻을 수 있는 인풋의 양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죠.

이는 물론 ‘내가 잘 몰라도 아는 척할거야! 어차피 모든 게 불완전한데 뭐’라는 닫힌 태도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게,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질문을 던지고 읽어가는 태도입니다.

저는 이와 관련해 저널리스트 존 맥피가 언급했던, 인터뷰 기법으로서의 “창조적 덤벙”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데요.

기자들이 인터뷰를 할 때 자기가 다 아는듯한 태도로 으스대고 있으면, 상대방이 ‘어라? 이것봐라’하면서 하려고 했던 말도 안한다는 것입니다. 기자가 오히려 자기가 모른다는 걸 강조하면서 겸손하고 순진한 태도로 귀를 기울이면 인터뷰이로부터 더 많은 의외의 재미난 것들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정말로 아무런 준비도 안해가서 멍때리고 있자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상대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 나의 사전지식을 괄호에 넣고 무지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를 가리켜 존 맥피는 창조적 덤벙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텍스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

“독서는 ‘모르기 때문에 읽는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책은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읽지 않는 게 절대적으로 좋습니다. 저 역시 대부분은 모르기 때문에 그 책을 읽고 싶고, 지금까지 그렇게 읽어 왔습니다” - 마쓰오카 세이고, <독서의 신>

【4.자석: 의도적인 확증 편향】

연구자님은 어떤 것에 관심이 생겼을 때, ‘공교롭게도’ 전혀 생각치도 못했던 곳에서 관련 내용을 발견한 적이 있지 않으신가요?

예를 들면 내가 최근 부동산에 관심이 생기면 갑자기 잡지나 유튜브, TV, SNS 등에서 갑자기 부동산을 다루는 내용들이 많아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심지어 전혀 부동산과 관련이 없는 소설이나 드라마를 보면서도요.

이런식으로 내가 무언가에 관심이 생기고 안테나를 세우기 시작하면, 갑자기 내가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온 우주로부터 관련 내용이 내게 흘러들어오는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책이든 펼치면, 거기서 반드시 내가 찾는 것을 찾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죠.

마지막으로 제가 <관찰력 기르는 법>에서 인상깊게 보았던 대목이 있습니다. ‘의도적인 확증 편향’이라는 것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의도적인 확증 편향’에서 일단 확증 편향이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어떤 문제에 각별한 관심이 있을 때면 ‘온 우주가’ 그 문제로 집중하는 듯한 자석같은 끌어당김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의도적 확증 편향이죠.

내가 편집자로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이유는 확증 편향이 맹렬할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다. 편견이 강하기에 노력할 수 있었다[…]가설을 가진 채 세상을 관찰하다 보면 그 가설을 보강하는 정보만 눈에 들어오고 그것 이외의 정보를 배제하기 쉽다. 그것이 ‘확증 편향'이다. 예를 들어 ‘우주’에 관심을 가지면 서점에서든 인터넷에서든 우주와 관련된 정보만 눈에 들어온다. 서점이나 인터넷상에 우주 관련 책이나 정보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관심이 그것에 집중된 것 뿐이다[…]확증편향을 의식적으로 사용하면 타자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더욱 상대에 대한 존경심이 깊어지며 자신의 정열을 높이는 등의 좋은 방향으로 작용한다.

-사도시마 요헤이, <관찰력 기르는 법>

물론 저자는 확증편향을 무조건 좋은 것으로만 찬양하진 않는데요. 그 부작용을 염두에 두면서, 의식적으로 이를 활용하려고 노력하면(‘의도적 확증편향’)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인스피아를 쓰면서 자주 그런 경험에 빠져들곤 합니다.

예를 들면 해외 디지털 문헌학자의 책을 읽으며 싸이월드 생각을 하고(링크), 19세기 프랑스의 풍자 에세이를 보며 OTT 생각을 떠올려보는 것입니다(링크). 그리고 보통 그렇게 조금 다른 맥락에서 나의 고민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때,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나만의 발견이나 재미난 영감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4)

이런 것이 바로 저자가 이 책에서 ‘확증편향’의 사례로 다루었던 것이고 이런 의도적 확증 편향을 땔감으로 쓰자!는 게 사도시마의 참신한 주장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기반으로 ‘의도적 확증 편향’의 일상적인 사례를 간단히 소개해볼까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회차 인스피아의 주제가 될 수도 있었던 어떤 흥미로운 이야깃거리에 대한 것입니다.

사실 제가 처음에 읽은 UX 디자이너 도널드 노먼의 책은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Living with Complexity>였는데요. 그가 많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한, 독창적인 이 디자인 책에서 말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작정 단순한 디자인이 정답이 아니예요. 우리에겐 적당한 복잡함이 필요합니다!”

그간 사용자 중심의, 쉬운 디자인의 가치를 강조해왔던 노먼이 이처럼 말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은 기본적으로 디자이너와 사용자 간의 ‘소통’입니다. 예를 들면 찻잔은 손잡이 모양과 크기 등을 통해 - 나는 차를 마실 때 쓰는 그릇입니다, 여기를 잡고 쓰세요! 라는 (들리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결함도 좋지만, 아예 손잡이를 없애버리거나 어떻게 써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기묘한 찻잔을 만든다면 거기에 사람들이 손을 씻거나 무시할 수도 있겠죠. 지나치게 복잡한 디자인이 문제이듯, 지나치게 단순한 디자인도 ‘소통의 실패’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fig.> '한국인이 절대 못읽는 글자=당기시오'. 하지만 UX(사용자 경험) 디자인의 측면에서, 당기는 문과 미는 문이 직관적으로 파악 불가능한 것은 디자인 실패입니다. 실제 해외에선 미는 문은 손잡이를 아예 달지 않고, 당기는 문에만 손잡이를 달아 이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적절한 소통을 위해선 적절한 수준의 '복잡함(규칙)'이 필요한 것입니다. (왼쪽) 도널드 노먼이 소장하고 있는 세개의 찻주전자. 각각이 다른 종류의 실용성, 복잡함을 품고 있는 찻주전자입니다.(링크)

이어 노먼은 ‘복잡한 디자인’이 필요한 이유를 두 가지 정도로 꼽습니다. 우선 어떤 복잡함은 없앨 수 없는-필수적인 복잡함이고, 또한 어떤 복잡함은 우리에게 재미를 주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성이론의 복잡함은 도저히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스턴트 커피 봉지를 똑 잘라서 끓는 물에 타마시면 가장 간편하지만, 우리는 때로 일부러 원두를 직접 갈아 사이펀 머신을 활용하며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여기서 복잡함은 오히려 사람들을 재밌게 해줍니다.

이 때문에 그는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의 결론에서, 필수적인 복잡함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사용자 역시 어느 정도의 복잡함과 함께 사는 법(Living with Complexity)을 ‘즐기고, 배울 각오’는 필요하다고 강조하죠. 소통은 양쪽의 노력이 다 필요한 문제니까요.

한편 저는 이 책을 완전히 ‘글쓰기/읽기’에 대한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 필자가 단순하고 간결하고 ‘쉬운’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괜히 어려운 말을 잔뜩 써서 읽는 사람을 권위로 주눅들게 하는 불필요한 복잡함은 나쁩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쉬운 글, 누워서도 꿀떡꿀떡 넘길만한 무난한 글만 쓰다보면 그냥 속빈 강정같은 것이 되기 쉽습니다. 읽긴 쉬운데,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거죠. 이 경우 겉으론 쉬운 말을 써서 소통이 된 것 같지만, 정작 소통이 안된 것입니다. 글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글에 있어서도 때론 복잡함이 필요합니다. 도저히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함은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밖에 없고, 때론 재미를 위해서도 이런 복잡함은 필요하니까요. 뭔지 모르겠는 알쏭달쏭한 글을 계속 곰곰 궁리해보는 재미가 큽니다. 적절한 복잡함이 주는 이런 쓸모와 재미를 위해선, 필자 뿐 아니라 독자 쪽에서도 어느정도 머리띠를 질끈 매고 ‘소통’을 위한 노력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디자인 책’은, 최근 제가 읽었던 어떤 ‘글쓰기 책’보다도 훨씬 더 글쓰기에 대해 흥미로운 해찰을 하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의도적 확증 편향을, 아마도 저는 그간 ‘해찰’이라는 단어로 설명해온 것 같습니다. 이런 해찰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그간 제가 글쓰기와 관련된 질문을 계속 마음 속에 품고 굴려왔기 때문일 것이겠고요.

이 모든 해찰에서, 질문을 던지고 책을 읽는 과정은 결코 동떨어져있지 않습니다.

✏️

“사물은 최대한 단순하게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더 단순해지면 안된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아무리 디자인이 좋아도 사용자는 주어진 몫을 다해야 한다[...]기술을 터득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우리는 이해를 통해 복잡한 시스템을 간단하고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 도널드 노먼,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4)인스피아 웰컴메일, 소개글엔 에밀 시오랑의 인용을 적고 있습니다. "나쁜 시인을 더 나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시인들의 글만 읽는다는 사실이다. 식물학, 지리학 책을 읽으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자기 분야와 멀리 떨어진 분야를 자주 접해야만 풍요로워질 수 있다." ㅡ에밀 시오랑

【5.맺음말】

앞선 챕터의 이야기에 조금 덧붙여봅니다.

인스피아를 기획할 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역시 ‘읽기 쉬운 글’이었습니다. 오늘날 신문의 라이벌은 다른 신문이 아니라 틱톡과 넷플릭스입니다. 화려한 영상이 가득한 세상에서 굳이 ‘글’을 읽자고 권하는 것은 역시 나름의 각오가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쉽기만한 글’을 쓰고 싶진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적은 글을 읽고 뿌듯해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와 책 열권 읽었어!), 글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독창적인 영감을 얻고 재미난 경험을 하는 것이니까요.

의외의 독특한 영감을 얻기 위해선, 질문만큼이나 읽기의 고단함과 성실함도 필요합니다. 발랄하고 통통 튀는 질문만으로 영감은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책을 ‘지팡이’ 삼지 않았다면, 또한 저만의 ‘안테나’가 없었다면 인스피아는 계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사이 어디쯤에서 힘껏 허우적대다보면 재미난 해찰거리가 나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아마도 영감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오늘 레터 서두에 이야기했던, ‘질문만으로는 반쪽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말과 이어집니다. 이 때 필요한 것이 사도시마 요헤이가 말하는 성실한 관찰의 힘입니다.

AI의 시대에 질문의 중요성 말고도, 조금 새삼스럽게도 ‘관찰력’의 필요성을 주장해봅니다.

사도시마 요헤이는 결국 관찰력이란 ‘사랑’이라고 말하는데요. 이는 비단 창작자 뿐 아니라,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더 즐겁게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저자의 한마디를 인용하며 오늘 레터를 끝맺습니다.

“앞서 창작에는 관찰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류 창작자는 모두 관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적었다. 사랑하는 대상을 관찰하고, 관찰하는 것을 표현한다. 즉 사랑하는 것을 어떻게 사랑하는지 표현한다. 관찰력이 있는 표현이란 사랑으로 넘치는 표현이다. 말을 바꿔보자. 일류 창작자는 사랑으로 넘친다[...]아, 인생이란 어찌 이렇게 물음으로 넘치며, 이리도 즐거운 것일까.”

-사도시마 요헤이, <관찰력 기르는 법>

※레터를 쓰며 읽은 책, 이 주제에 관심이 있으신 독자들이 추가로 읽을만한 서적 등을 추천합니다.

사도시마 요헤이, 구수영 옮김, 『관찰력 기르는 법』, 유유, 2023.

-고단샤에서 <슬램덩크>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를 편집하다가, “작품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작가다”라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편집의 세계를 파고든 일본의 스타 만화 편집자 사도시마 요헤이가 쓴 책입니다. 오늘 레터의 내용은 책의 줄기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는, 거기서 제가 눈에 띈 포인트를 중심으로 엮었는데요. -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책을 지팡이삼아 인스피아 쓰는 과정에 대해 써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제목은 ‘~하는 법’이지만 독자를 가르칠 작정이라기보다는 결국은 책 속에서 본인이 그 답을 찾아 헤매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도널드 노먼, 이지현 외 옮김,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 교보문고, 2012.

-지난 회차에서도 각주를 통해 짧게 소개했던 책입니다. 제목 그대로 '심플은 정답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책인데요. 심플과 복잡함 사이의 관계,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 등에 대해 명쾌한 글을 따라 해찰해볼 수 있는 좋은 책입니다. 현재는 해당 판본은 절판되었고, 유엑스리뷰에서 재판본(링크·2018)이 <도널드노먼의 UX디자인 리뷰>라는 제목으로 유통되고 있습니다.

박순찬, 『냥도리의 그림수업』, 아라크네, 2022.

-경향신문에 약 25년간 장도리 만화를 그려온 캐리커처의 장인 박순찬 화백의 만화입니다. ‘그림 바보’ 냥도리와 인간 친구 리리가 직접 그림 그리기에 도전하는 내용인데요. 단순히 그림 그리는 ‘스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대상의 본질을 관찰하고 통찰력과 상상력을 키우는 법에 대한 핵심을 찌르는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그림그리기는 시도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 책은 심지어 그림그리기를 안할 사람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입니다.

【글 속 한 문장🖍】

👤주제에 대해 더 읽을 만한 글들을 골랐습니다. 각 사진을 누르면 글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글은 책상에 앉아서 쓰는 게 아니다

독서시간: 약 4분 / 글자수: 약 1700자

🖍글 속 한 문장

“이 글 쓰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라는 질문 받을 때가 있다. 정확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과 마주하며 마음을 가다듬고 집중한 시간만이라면 대답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만 해서 쓰는 글은 거의 없다. 무슨 말이냐면, 글 한 편 쓰려면 무척이나 다양한 장소와 상황에서 글에 대해 생각하며 자료를 찾고, 무엇보다도 메모하기 때문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표정훈 칼럼니스트의 메모와 관련된 예스24 칼럼입니다. 사실 저도 인스피아를 쓸 때 얼마나 걸리냐는 질문을 받으면 비슷한 생각이 들곤 합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골똘히 글을 쓰는 시간만으로 셈하긴 어려울테니까요. 이런 일상적 관찰력을 또 '메모 스킬'이란 단어로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란 생각이 듭니다.

생택쥐페리는 머릿 속에 담아 다니던 '어린왕자'의 이미지를 어느날 레스토랑의 냅킨에 그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나중에 <어린왕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창작’과 ‘탐구’는 동떨어질 수 없다

독서시간: 약 8분 / 글자수: 약 4200자

🖍글 속 한 문장

‘과학이란 무엇인가?’[...]“과학이란, 새로운 것을 찾게 해주는 생각의 방식이다”라고 하겠습니다. 즉, 우리가 아직 본 적이 없는 것, 아직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갖고 있는 ‘호기심’과 서로 밀어주면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는 시공간을 열어나가게 해주는 사고방식으로서의 과학의 본질을 마음에 새겨주셨으면 합니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박주용 카이스트 교수는 어느날 질문을 받았습니다. “왜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의 나라인 한국에서 흥하는 과학서사 콘텐츠는 흥하지 않을까요?” 박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해 궁리하여 강연을 진행했고, 그 내용을 담은 칼럼입니다. 새로운 창작을 위해선 다각적인 탐구가 필요합니다.
칼럼은 상하편으로 나뉘어져있고, 위의 그림을 클릭하시면 상편, 이 (링크)를 클릭하시면 하편을 읽으실 수 있습니다

생각을 깨지 못한다면 관찰이 아니다

독서시간: 약 3분 / 글자수: 약 1400자

🖍글 속 한 문장

“관찰은 사물의 상태나 변화를 ‘객관적’으로 ‘주의 깊게’ 보고, ‘조직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과학은 관찰의 역사이기도 하다. 철학자들도 관찰에 대해 계속 질문했다…좋은 관찰은 어떤 현실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현실과 가설의 어긋남을 깨닫고, 가설을 갱신하는 것이다. 나쁜 관찰은 현실과 가설 사이의 차이점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홍순철 북칼럼니스트가 <관찰력 기르는 법> 일본판이 출간되었던 2021년, 이 책을 읽고 국내에 소개한 서평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도 '가설'이란 단어에 대해 중요하게 살펴보았는데요. 아무리 가설이 무책임하게 튈 수 있는 것이라곤 해도, 필연적으로 나의 ‘상식’에 매여있을 수밖에 없고 - 면밀한 현실 관찰을 통해 그 틈새에 주목하고 나의 생각을 깨뜨리고 조율해가는 과정이 필수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부하는 ‘호기심’, 그리고 ‘심정’

독서시간: 약 5분 / 글자수: 약 1700자

🖍글 속 한 문장

“내가 그토록 끈질기게 작업에 몰두했던 것은 호기심, 그렇다 일종의 호기심 때문이었다.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호기심이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것을 허용해주는 그런 호기심 말이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런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l미셸 푸코, <성의 역사> 서문 중”[...](하지만) 누군가 억압과 차별받는 존재로서 혹은 그 존재의 가족, 친구, 동지로서 공부하고 있다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 자료들을 확인하고 통념을 비판하고 차별의 구조를 폭로할 때 이들의 연구를 추동하는 힘을 호기심으로만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김스피의 블라블라

고병권 연구원의 칼럼입니다. 그는 한때 공부하는 동기와 관련해 ‘호기심’이라는 단어에 강하게 끌렸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며 공부의 동기로서의 ‘심정’이라는 단어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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