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레터에서는 서사(1주차·💌얼룩말 세로의 서사, 사람의 서사), 반복작업과 노동(2주차·💌‘단순 반복 작업’은 사라져야 할까? : 노동의 미래), 감각(3주차·💌스마트폰 너머의 감각 : 만지고 킁킁대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보았습니다. 매 회차가 그렇듯 이번달의 회차들도 무난하게 쓰여진 경우는 없지만, 그중에 각별하게 갈지자로 헤매며 쓴 회차는 역시 반복작업을 다루었던 레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길을 아주 잃진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든든한 ‘지팡이(책)’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4월은 ‘책의 달’이라고 할만합니다. 지난 12일은 제1회 ‘도서관의 날’이었고요. 주말인 23일은 ‘세계 책의 날’1)이었죠. 여러 도서관에서도 도서관의 날, 책의 날을 맞이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했는데요. 지난 주말에 빌렸던 책을 반납하고 다른 책들을 빌리기 위해 평소 다니던 도서관에 갔더니 ‘책의 날’ 기념으로 사서 선생님으로부터 예쁜 다홍색 장미꽃을 한 송이 선물받았습니다. 공짜로 재미난 책도 빌려오고 꽃도 받을 수 있었으니 고마운 일입니다. 

늦은 밤 책과 꽃을 들고 돌아오는 길엔 시기를 맞추어 활짝 핀 라일락향이 거리에 진동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기 전 벤치에 앉아 눈을 감고 한참 가만히 냄새를 맡았습니다. ‘감각’ 회차(3주차 레터)를 썼던 때의 기억이 떠올라서 조금 더 각별하게 코를 킁킁거리며 ‘라일락향’이라는 단어 아래에 숨겨진 다양한 냄새들을 파고들어보았습니다. 그때 멀찌감치서 색소폰 연주 소리가 잔잔하게 들려왔습니다. 평소라면 그냥 이어폰을 꽂고서 재빠르게 지나쳐갔을 길입니다. - 이렇게 매 회차를 쓸 때마다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소중한 렌즈를 더해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구자님께도 인스피아가 때때로, 세상을 보는 새로운 렌즈를 하나씩 더해드릴 수 있다면 기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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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인스피아를 시작한 뒤 제게 있어 책이란 매일 허우적대는 물같은 것이라, 평소 ‘책’이라는 것 자체에 대해 새삼 생각해볼 기회가 많진 않았는데요. 

최근 여러 기회를 통해 인스피아를 처음 기획하던 무렵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어째서 ‘책’을 붙잡고 읽기로 결정했는지 등에 대해 떠올려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에세이 레터에서는 ‘책의 날’을 맞아 책에 대하여 조금 해찰해보기로 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이상한 책’- 나는 왜 이상한 책을 좋아하는가,에 대해서입니다.

우선 ‘이상한 책’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이상해’라고 말할까요? 주로 내게 ‘낯선 것’에 대해서 이상하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이 책들은 읽거나 말거나 맘대로 하세요’라고 말하는 서평집은 이상합니다.(링크) 마치 길거리에 돗자리를 펴놓고 국내산 양말들을 잔뜩 팔고 있길래 가까이 다가갔더니 가격 대신 ‘사든지 말든지’라고 써둔 팻말을 맞닥뜨린 것 같은 당혹스런 느낌입니다. 혹은 어쩌면 사람들은 지옥철을 좋아할 수도 있다고 말하는 책은 이상합니다.(링크) 공격성이 인간의 재능일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은 이상합니다.(링크)...아니, 그런데 ‘최저 임금’이 아니라 <최고 임금>이라고?(링크) 

이런 책들은 실제로 제가 우연히 발견해서 나름대로 흥미롭게 읽은 책들입니다. 이처럼 대체로 저는 서가를 지나다니다가 혹은 어디서 스쳐지났든 제목이라든지 책등, 저자 소개, 후루룩 펼쳐본 페이지, 디자인으로부터 힘껏 ‘이상해...’라는 신호가 오는 책을 우선적으로 집어들곤 합니다. 

여기서 ‘이상한 책’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자기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나름의 분석과 참신한 결론까지 곁들여서 내놓는 책과 자기가 이상한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책입니다. 전자는 정말로 비범한 책이고, 후자는 그에 비해선 덜 비범하달 수 있지만 그래도 이런 책들도 저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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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항상 기쁜 일입니다. 인스피아에 다루는 책이 제게 당도하기까지의 ‘기적’에 대하여 곰곰 생각해보곤 합니다. 어떤 필자가 오랫동안 궁리해온 내용을 오랜 시간 숙성하여 책으로 씁니다. 그것이 번역되거나 기획되어 하나의 완성된 책이 됩니다. 서평가들은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쓰고 그리고 그 책이 누군가의 신청으로 도서관에 들어갑니다. 사서가 이를 잘 분류해 배치해둡니다. 그리고 저는 서가를 해찰하다가 간편하게 책을 볼 수 있게됩니다...이 밖에도 책이 탄생하여 누군가의 손에 당도하는 수많은 경로가 있습니다. 그 경로가 아무리 다양할지라도, 핵심은 그 중 하나의 고리라도 끊기면 책의 생태계는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때는 강남 일대에 빼곡히 들어찼던 코인 투자 관련 회사들. ‘코인 광풍’이 휩쓸고 간 뒤 현재 37곳 중 남은 곳은 7곳 뿐이라고 합니다. 경향신문 사건팀 기자들이 직접 찾아가본 곳에 남은 것은 황량한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책상 뿐. ‘ㅇㅇ회사 아시느냐’는 말에 주변 경비 노동자, 공인중개사 등은 손사래를 쳤습니다. “사기꾼들이 얼마 준다는 둥, 몇 건 더 하면 얼마를 더 벌 수 있다는 둥 떠들더만. 우리한테도 하라 하고. 한 달에서 석 달이면 사기 치고 빨리 도망쳐요. 아니 그렇게 많이 벌면 지들이 다 해 X먹겠지, 안 그래요?”

지난 4월 2주차 레터에서는 리처드 세넷의 책 <장인>과 토마스 바셰크의 <노동의 새로운 철학>을 통해 “반복 작업은 단순하지 않다. 헌신적인 반복 작업에서 현장에 대한 고려와 창조성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점차 반복 작업에 대한 가치 및 장인(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잃어가고 있다”는 취지의 내용을 다루었습니다. 해당 회차를 보낸 뒤, 주제와 관련하여 읽어볼만한 칼럼을 찾았기 때문에 함께 읽어보고 싶어서 편지에 공유합니다. 

‘헌책’에 대해 해찰해보았던 회차입니다. 헌책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종이책의 물성을 바탕으로 합니다. 전자책에 헌책이라는 말을 붙일 수는 없으니까요. 

<헌책방 기담수집가> <오래된 새책> <채링크로스 84번지> 세 권을 다루어 보았고요. 각각 처한 위치는 다르지만(헌책방 주인/희귀본 수집가/헌책방 단골) 책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살아가는 책 덕후들의 책 수다가 즐거웠습니다.

특히 헬렌 한프의 “반드시 옷은 입어보고 사듯이, 나는 반드시 읽어본 책만 산다”라는 지론에 굉장히 공감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음에 한번쯤 도서 구입 습관이라든지 장서에 대한 회차를 다루어보아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회차 레터(‘스마트폰 너머의 감각 : 만지고 킁킁대기‘)에 대한 감상 및 피드백 노션 페이지는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