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인스피아 저널, (22), 2022.1.5, 1-8 (8pages)

(Source)     Journal of the Inspia

지난해 11월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 제목입니다. 예전부터 그의 글을 읽을 때면 ‘이런 사람의 삶은 얼마나 흥미진진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는 정작 “저는 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정말 지루한 사람이라고 여기죠. 왜냐하면 굉장히 루틴하게 사니까요. 건강을 위해 운동하고, 성실히 글 쓰고, 일찍 자고, 친구도 잘 안 만나거든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그간 의외로 예술가, 작가 등 창조적인 일을 해왔던 사람들 중 루틴한 삶의 가치를 주장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부분이 ‘의외로’ 느껴지는 이유는 역시 보통 예술가들은 그들의 작품, 업적으로 평가받지 그들의 일상에 대한 얘긴 듣기 힘들어서가 아닐까도 싶은데요. 보통 신작을 낸 작가에게 작품에 대한 질문 대신 혹시 아침은 뭘로 드시나요? 이빨은 몇시에 닦으세요? 라는 걸 묻진 않을테니까요. 

메이슨 커리의 <리추얼>은 바로 ‘그런 거’에 집중한 책입니다. 메이슨 커리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삶을 통해 창조적인 업적을 이룬 작가, 예술가, 학자 161명의 ‘일상 생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이라고 해도 복잡한 걸 다루진 않습니다. 누구나 살기 위해 해야하는 일들, 예를 들어 밥 먹고 잠 자고 일하는 걸 ‘어떻게’ 하는지. 특히 그 중에서도 창조적인 일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쏟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선 꽤 부지런하고 규칙적인 삶을 살았던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먼저 둘러보자면, 윌리엄 제임스는 창작을 습관화하는 루틴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메이슨 커리의 책이 위까지의 내용만 담고 있었다면 제가 레터에서 이 책을 다루진 않았을 것 같습니다. 유명한 예술가들이 제각기의 ‘지루한’ 혹은 ‘엽기적인’ 습관으로 훌륭한 일을 해냈다는 것은 꽤 참신한 얘기지만 또 그렇게까지 의외인 얘기들은 아니니까요.(“항아리에 물을 채워야 물이 찬다!”) 독자의 기를 죽여놓는 여느 자기계발서의 예술가 버전 정도라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메이슨 커리 기획의 진가는 단순히 훌륭하고 규칙적인 삶을 산 예술가들의 사례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책에는 비교적 즉흥적이고 규칙 없는 삶을 살았던 예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옵니다. 이들 중에는 선천적으로 자신은 게으르다고 인정한 이들도 많았지만, 결국 천성과 필요 사이에 자기 나름의 방법을 탐구해왔죠. 　

18세기 영국의 시인, 평론가인 새뮤얼 존슨은 “나태는 반드시 무찔러 없애야 할 질병”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그런 싸움에 적합하지 않다며 “나는 어떤 계획도 이틀 이상 지속해본 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12시쯤에도 항상 침대에 누워있었고 술을 마시러 가자는 제안을 거절한 적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이에 그의 친구 “내 짐작이지만, 존슨은 밤에 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게 분명했다”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낮 11시까지 침대에서 뒹굴대며 사색하고 10시간 이상씩 자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위의 사례들을 흥미롭게 읽어내려가다보면 문득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왜냐면 <리추얼>은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의 ‘일상생활’을 촘촘하게 그려내고 있지만 이중 아이를 돌보거나 세탁, 음식 준비를 하는 내용은 아예 없다시피하거든요.(위에 언급한 조지 오웰의 사례는 161건의 사례 중 거의 유일하게 작가 본인이 밥을 만들어먹는 사례로 등장했습니다) 이는 어쩌면 <리추얼>에 등장한 161명의 예술가와 학자들 중 여성이 27명에 불과하다는 사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추얼>의 후속작으로 출간된 <예술하는 습관>은 여성들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여성 작가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해서 특별히 <리추얼>의 서술 방식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성 작가이든 남성 작가이든 대체로 기본적으로 외골수이고 괴팍하다(...)는 것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죠. 

<작은 아씨들>의 루이자 메이 올콧은 한번 불타오르기 시작하면 “식사도 건너 뛰고, 잠도 거의 자지 않고” 맹렬한 에너지를 쏟아내며 일에 매달린 ‘집필광’이었는데요. 어찌나 글을 써댔는지 오른손에 쥐가 나서 왼손으로 글을 쓰는 법을 익혀야할 정도였다고도 합니다. 

20대 후반에 등단해 정력적으로 걸작들을 써낸 미국 극작가 릴리언 헬먼은 하루에 진한 커피 20잔을 마시고 담배 세갑을 피웠다고 합니다. 작업실인 서재 앞에는 “노크하고 나서 대답을 기다리세요. 대답이 없으면 그냥 가세요. 다시 돌아오지 마세요...밤낮 없이 언제나 적용되는 경고입니다”라고 엄중한 경고문을 써붙여두기도 했습니다. 

다만 <예술하는 습관>에선 가족이나 육아, 집안일 등 사이에서 창조적인 활동을 할 시간을 어떻게 ‘확보’하고 ‘조율’하는지가 더 두드러집니다. 농장에서 집안일, 닭 모이주기 등의 일들을 하며 작업을 하는 현대미술 작가 안드레아 지텔은 작업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의식주는 최대한 간소하게”라는 원칙을 지킵니다. 그는 계절별로 ‘유니폼’을 입는데, 석달 내내 편안하게 입을 수 있으면서도 겉보기에도 나쁘지 않은 옷을 직접 만들어 입는다고 합니다. 

시대는 분명히 여성 작가들에게, 남성 작가에겐 없는 짐을 지웠습니다. 하지만 ‘한계’가 언제나 ‘방해’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200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은 아들 피터와 함께 지냈는데, 그는 ‘돌봐야할 아이가 있었기 때문에 글을 쓰고, 살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책임이 없었다면 1950년대의 퇴폐적인 분위기의 소호 거리에서 수많은 다른 ‘기라성같은 인재’들처럼 술을 마시며 자신의 재능을 허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그는 매일같이 새벽 5시부터 아이를 깨워 씻겨 준비시키고 학교에 데려다주고, 계속 글을 쓰다가 컵을 씻다가 쓰다가 청소했다가를 반복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집안일’을 하기 위해 멈추는 시간마저도 모두 글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었죠. 그는 그런 ‘물리적 과정’을 집중하는 길로 여겼습니다. 화가들이 붓과 팔레트를 씻으며 한숨 돌리는 것처럼요. 레싱은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