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이기도 해서 그런지, 북마크를 해둔 기사들의 갈무리를 하다보니 도파민이나 디지털 중독 관련 보도들이 많이 눈에 띄는 것 같습니다. 

한 언론사는 ‘도파민 인류’라는 제하의 신년 기획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고요(링크). 이용자를 '중독'시키는 알고리즘 비즈니스 때문에 우리는 집중력을 잃고 있으며, 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어떤 카페는 아예 휴대폰을 잠금장치가 달린 상자에 넣게 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저 역시 평소 멍하니 쇼츠나 새 글이 없을 때까지 SNS를 눈팅하다가 잠을 설치고 눈물을 흘리곤 했기 때문에, 관심 있게 관련 보도나 책들을 읽어 왔는데요. 

문득 최근 이와 관련된 생각을 하게 될 계기가 있었기 때문에 짧은 해찰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새해에 저는 자주 접속하는 앱인 유튜브 메인화면에 변화를 주었습니다. 

구글의 첫 화면처럼, 시작화면에 알고리즘에 의한 추천목록이 뜨지 않도록 바꾼 것인데요. (유튜브는 지난해 중순쯤부터 일부 사용자를 대상으로 해당 기능을 시험 적용을 시작했다가(링크) 모든 사용자를 대상으로 확대했다고 합니다.)

평소 저는 주로 음악을 듣는 용도로 유튜브를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유튜브에 들어갈 때마다 메인에 뜬 신기한 쇼츠(1분 이하의 짧은 동영상)를 멍하니 보느라 상당한 시간을 소비하곤 했던 저는 메인 화면을 깔끔하게 정리하게 되었고, 이처럼 알고리즘에서 '해방'된지는 대략 한 달정도 된 것 같습니다. 일종의 '디지털 디톡스'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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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알고리즘 추천 기능을 삭제하고 나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열심히 상황별 재생목록을 만들고 있는데요. 

원래는 이런 걸 만들지 않고 그냥 멍하니 알고리즘의 선택을 하면 되었는데, 귀찮고 번거롭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문득 생각했습니다.

애초에 예전엔 어떤 노래를 듣기 위해서는 '굳이' 음반점에 가서 음반을 구입해야했고, '굳이' 내가 듣고 싶은 mp3로 플레이리스트를 꾸리는 게 대체로 기본이었습니다. 조그만 용량에 어떻게든 좋아하는 노래를 꾸리기 위해 아예 노트에 듣고 싶은 노래 제목들을 빼곡히 적어두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잡지에서 소개된 추천 신곡이나 라디오에서 듣다가 깜짝 놀란 음악 제목 등이요. 

그리고 이번에 새삼스럽게 직접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다보니 생각보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이렇게 적었구나! 하는 씁쓸한 깨달음도 따라왔는데요. 

이 때문에 정말 오랜만에 '음악 다락방'에 쌓인 먼지를 터는 느낌으로 음악과 관련된 서적들을 보고, (음악을 추천받겠다는 목적으로) 웹진이나 뉴스레터 등을 살펴보고, 라이브 영상을 찾아보고, 라디오를 들어보거나 하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으로는 수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죠. 그동안 저는 거의 매일같이 '음악'을 들었는데요!

그간 항상 유튜브에 들어갈 때마다 '무언가들(시청자 맞춤 동영상)'이 잔뜩 떴기 때문에, 내 안이 텅 비워져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부분이 어쩌면 더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비어있었는데, 비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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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항은 있되, 70년 간 해당 혐의로 기소된 건수가 0건인 '죄'가 있다고 합니다. 피의사실공표죄입니다. 아직 판결이 나지 않은 사안에 대해 피의 사실을 사전에 공표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인데요. 연예인 등 유명인들의 수사 과정에서 오랜 세월 동안 이 원칙은 공공연하게 무시되어왔습니다. ‘알 권리’ 등의 이유로요. 

무엇이 문제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가야 할까요?

전세계적으로 10대 이하의 젊은세대들이 점차 공개된 커뮤니티, SNS에 글을 쓰기보다도 점차 소수의 지인들만 있는 공간에서 소통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의 이유는 여러 맥락에서 해석이 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 중에는 캔슬 컬처나 SNS 추적으로 인한 리스크와 노출 피로감(잊혀질 권리), 기업화된 인플루언서 생태계 등의 차원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주축이 되는 시대엔 앞으로 인터넷 생태계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갈지 궁금합니다.

한편 오늘 에세이에서도 살펴보았듯, OTT의 시대에도 여전히 면대면의 소통, 몰입된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오랫동안 큰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위험이 예견되고, 또 여러번 징조를 드러냈음에도 문제가 방치되어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해진 상황을 '회색 코뿔소'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에 반복해 발생하는 사회적 재난들 가운데는 그 면면을 살펴보면, 얼마든 중간에 막을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막지 못했던 '회색 코뿔소'의 문제가 많습니다. 

더 큰 문제는 재난이 발생하고 난 뒤에도 이에 대해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고, 또 책임을 지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재난은 반복될 수 밖에 없습니다. 

연구자님은 FOBO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FOMO(Fear OF Missing Out)와 비슷한 이 단어는 ‘Fear Of Better Options’ 의 줄임말인데요. 우리말로 풀면 ‘더 나은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공포’ 입니다.

선택지가 늘어난 만큼 우리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 같은데요. 실은 오히려 지나치게 늘어난 선택지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마음을 줄만한 콘텐츠나 경험에 각별히 몰두해볼 기회 자체를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이때 과연 우리가 어떻게하면 선택을 잘 할 수 있을까? - 아니, 애초에 선택을 '잘' 하는 게 중요한 걸까? 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던 레터였고요. 오늘 에세이 레터를 쓰면서는, 큐레이터 '추천'에 대한 대목을 적다가 이 레터가 떠올랐습니다.

인간 큐레이터-연결하는 사람(Mediator)의 진심어린 추천, 조언이 소중하긴 합니다만, 역시 망할 각오(?)를 하고서 무언가를 과감하게 질러보고 실패해보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FOBO는 벗어던지고서요.

지난 회차 레터(‘지하철 의자가 사라진 날 : 의자는 ‘사치’인가?‘)에 대한 감상 및 피드백 노션 페이지는 아래 버튼을 누르면 보실 수 있습니다.